문학의 샘

[수필]가로 놓인 강/홍유경

concert1940 2007. 3. 14. 19:46

가로놓인 강 

 

“희정아 건강 조심하고 연습 열심히.” 건드리면 울음보가 터질듯 한 딸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안쓰럽고 측은해 보이는 딸을 보내며 매번 가슴이 메어온다. 한창 부모 그늘에서 어리광을 부리며 예쁘게 학창시절을 보내야 하는 나이에 먼 이국땅에서 홀로 어려움을 감당해야하는 아이가 한없이 딱해 보인다.

 

 밤낮으로 연습에 몰두해야하는 아이, 무엇 때문에 어려운 공부를 택해 고생을 하는지, 생각하면 모두가 내 탓인 것만 같다. 남편은 아무 말이 없다. 아이들이 다시 돌아갈 때마다 입을 다무는 남편, 서운한 마음을 추스르느라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자식 일이라면 열심인 남편이기에 서운함이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있다.

 

 다섯 딸을 모두 국외로 내보내고 오가는 길목에서 기쁨과 슬픔의 엇갈림으로 보내버린 10년 세월, 그 시간들 속에 결실 맺는 사과나무로 자랄 아이들을 기다린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입국하는 가족을 마중하려는 사람들이 북적인다. 아이들을 보내고 이 층계를 밟을 때마다 입국장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부럽고 내 가슴이 설렌다. 아이들을 맞던 느낌이 남아 있어 설까.

 

 돌아오는 길은 멀다. 아이들을 마중하러 달리는 길은 솜털처럼 가볍고 환희가 가득하지만 배웅을 하고 돌아오는 길은 무겁고 어둡다. 남편은 창밖을 응시하고 말이 없다. 하나도 아니고 아이들 다섯을 모두 보내놓고 우리 내외는 속빈 강정처럼 허탈하게 지냈다. 이따금씩 전해지는 아이들의 콩쿠르 우승 소식으로 별똥별을 좇듯 순간의 기쁨에 젖곤 하지만, 그저 지나가는 바람 일 뿐.

 

강을 따라 달리는 차창을 연다. 비릿한 바람 냄새가 코끝에 스민다. 남편은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오늘따라 서운한 마음이 큰 모양이다. 남편은 서운함, 기쁨 슬픔을 감추지 못하는 게 큰 흠이다. 감성적인 성격이어서 표현이 다양하게 표출된다. 옆얼굴을 훔쳐보며 입을 다물었다. 그래야만 내 자신을 자제할 것 같아서다.

 

 강가를 달리며 아이와의 가로놓여 있는 게 바로 이 강임을 깨닫는다. 어디론가 끊임없이 흘러 정착할 곳을 찾아가는 물줄기처럼 아이들은 차츰 우리의 품을 떠나갈 것이기에. 차창으로 빗줄기가 부딪히며 도록도록 물방울을 그린다.

 

 어느 화가의 물방울을 담은 화폭을 연상해 본다. 내 가슴 안에서도 물방울이 흐른다. 크고 작게 멈추었다가 흩어진다. 물방울 속에 아이들이 웃는다. 손짓을 한다. 작가가 물방울을 화폭에 담는 까닭은 아마도 순간에 사라져버림을 아쉬워해서 일까.

 

 아이 방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돈다. 몇 시간 전만해도 따뜻했던 방안에 냉기가 돌고 정적이 흐른다. 떠나보내는 일에 익숙하다고 스스로 최면을 걸어왔던 십 수 년이다. 억지로 되지 않는 게 자식과의 인연인가. 아이들마다 차례로 유학을 보내놓고 그리워하는 세월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헤헤거리던 아이의 모습이 이곳저곳에 떠다니며 손에 잡히지 않는 그림자로 남아있다. 아이와의 사이에 가로 놓여있는 강, 그 강을 넘나들며. 허허한 가슴에 그리움만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