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향하여
꿈을 향하여
얼마나 좋으면 입을 다물 줄 모르고 “좋습네다.”를 연발하는 탈북 동포들. 지난 봄, 베이징 주재 스페인 대사관 앞에서 농성을 벌이던 절실한 얼굴이 아니라 여유와 웃음이 깃든 우리 동포들의 모습은 나른하던 몸의 기를 한꺼번에 상승시켜 주는 활력소였다.
25명의 탈북자 소식은 이른 새벽을 깨우는 자명종 소리처럼 귓전을 때렸다. 가슴이 설레고 콧등이 시큰거렸다. 생명을 걸고 탈출을 시도한 저들의 사진이 실린 신문을 한참동안 들여다보았다.
얼마 전 개나리와 진달래가 만발한 앞산에 올라가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뽀얀 안개가 내려앉았던 나무 이파리들은 초롱초롱 물방울을 달고 반짝이고 있었다. 봄이 좀 일러서인지 쨍하고 갈라질 듯한 푸른 하늘에 눈이 시리다. 문득 이런 평화스런 환경에서도 ‘봄을 탄다느니, 기운이 없다느니, 밥맛이 없느니’ 했으니, 얼마나 작은 불평 속에 살아왔는지를 새삼 돌이켜보게 된다.
마을버스를 타고 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본다. 작은 흥분이 이는 얼굴들이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탈북자 뉴스가 또다시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정류장이 아닌데 버스가 선다. 한참 만에 할머니 한 분이 다리를 끌며 힘겹게 버스에 오른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젊은이가 얼른 일어나 할머니를 부축하여 자리에 앉힌다.
멀찍이 앉아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나는 ‘꿈’에 대한 생각에 빠진다. 분명 이 사회는 아름답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꿈이 있다. 지금 이 순간의 광경은 한 폭의 그림으로 모두의 가슴에 아로새겨질 것이다. 이 젊은이는 한껏 꿈을 키워 가는 청년임에 틀림없다. 할머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할머니 역시 이 젊은이를 보며 "살만한 세상이야." 하면서 아주 작은 꿈을 지니게 될 것이다. 승차장이 아닌데도 할머니를 위해 차를 세운 운전기사의 마음은 어떤가. 교통순경이 보았다면 벌금처분이 내려질 텐데도 할머니를 위해 선뜻 차를 세운 것이다.
꿈이 있는 사람은 사랑이 있다. 정이 있고 따뜻하다. 꿈은 인간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고 미래를 향한 희망을 갖게 한다. 또한 거리낄 것 없는 떳떳함과 용기가 있다. 누구 앞에서나 과묵하지만 교만하지 않다.
보슬비가 내리는 날을 나는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는다. 조용히 내리는 비에 마음을 얹어 시를 쓰고 모차르트를 들으며 사유에 젖는다. 하얀 눈송이가 흩날리는 날, 털목도리를 두르고 눈을 맞으러 나가 두 손바닥에 내려앉는 눈송이를 사랑스런 눈으로 들여다보며 꿈에 젖어든다. 한겨울 나목을 바라보아도 슬프지 않다. 다가올 봄의 파란 새순을 이미 보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길섶의 풀꽃을 만나도 살아 있음에 감격하며 고마움을 보낸다. 이 사회는 꿈이 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들이 있으므로 탈북 동포의 가슴에 환희를 채워주는 것이다.
아침 신문이 안겨 주었던 충격이 가시지 않은 채 잠시 자신을 돌아본다. 탈 북 동포들이 죽음을 마다 않고 탈출하여 찾아온 이 환경에서 과연 나는 얼마나 감사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지. 작은 고통 하나에도 불평을 일삼으며 얼마나 안이한 삶을 살아왔던가. 순간 목이 멘다. 나에게 주어진 축복된 상황을 저버리고 스스로 자학하며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비판만 해 왔다. 가슴속으로 갑자기 촉촉이 비가 내린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며 물안개를 피우기 시작한다. 목구멍에서 꺽꺽 소리까지 치솟으며 비는 한없이 가슴속으로 흘러내린다.
이른 새벽 이슬 방울 같은 신선한 뉴스로 도시는 웅성거린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의 얼굴에는 화기가 돈다. 아직 신문을 보지 못한 사람들조차 그저 술렁이며 마음이 들떠 보인다. 마치 한 해를 보내면서 마지막 달력을 떼어내고 새해 첫 장을 여는 설레임 같다고 할까. 내가 이럴진대 탈북 동포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빙하의 절벽에 매달려 정상을 향한 단 하나의 소망을 이루고자 생명을 담보했던 그들의 성취감을 상상해 본다. 새파란 봄에 서 있는 탈북 동포들의 얼굴마다 감출 수 없는 안도와 행복이 서려 있었다. 대사관 앞에서 농성을 할 때의 눈빛이 아닌, 이제는 여유와 안도의 표정에 시종 웃음을 머금고 있는 탈북 동포들에게 반가움과 더불어 진한 연민을 금치 못한다.
이 세상에는 얻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너무나 원해서 얻어지는 것과 또 하나를 버림으로써 얻는 것이다. 이들은 후자에 속한다.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다. 고향 산천과 애틋한 인연들을 끊어버리고 혹여 생명까지도 버릴 수 있는 용기로써 실행한 탈출, 이는 선뜻 해낼 수 있는 모험이라기에는 너무도 처절한 새 삶의 도전인 것이다. 그리하여 얻어진 감격이기에 어떠한 말로도 형언키 어려울 것이다.
같은 하늘 아래 한 핏줄을 이어받은 끈끈한 민족이지만,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의 비애 속에서 쟁취한 자유와 평화에 감격해하는 얼굴들, 신문에서 활짝 웃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한없는 애정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