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인테리어

모던과 유러피언, 그 의외의 조화

concert1940 2007. 5. 25. 22:04
글 손영선 기자 xyz501@design.co.kr 사진 박찬우 디자인 및 시공 A&A(02-512-0121)
경기도 죽전의 한 아파트 단지 8층에 위치한 박장준 씨의집 을 들어서면 처음 드는 생각이다. 널찍한 현관은 초록 식물과 화사한 햇살이 손님을 반기고, 다이닝 룸에는 서까래 천장을 배경으로 앤티크 샹들리에가 멋스럽게 매달려 있다. 한쪽 면을 벽돌로 마감해 마치 성벽을 연상시키는 거실과 아기자기한 등과 로맨틱한 벽지, 패브릭으로 연출한 침실도 개성이 뚜렷하고 이국적이다. 밖으로 보이는 옆 동의 건물이 아니라면 이곳이 아파트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다. 찬찬히 둘러보면 앤티크 장식장과 아르데코풍의 파티션, 모로코 조명등이 제각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처럼 이 집의 인테리어는 하나의 스타일로 정의되지 않는다.
“처음 아내와 제가 디자이너에게 요구했던 것은 앤티크 느낌이었습니다. 평소 아내도 저도 집 꾸밈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자연스러운 세월의 손맛과 기품이 서려 있는 앤티크가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실제 앤티크 가구들을 고르다 보니 생각보다 실용적이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만큼 좀이 슬거나 낡아서 마모된 부분이 많았고, 특유의 냄새가 나기도 했지요. 그래서 모던한 스타일과의 절충을 시도했습니다. 저희 집은 모던 유러피언 스타일쯤 되지 않을까요?”
이 집의 인테리어는 유럽풍의 연출로 특히 유명한 디자이너 신구철 씨가 맡았다. 신구철 씨는 우선 집 전체의 컬러를 모노톤으로 통일감 있게 설정해 모던과 유러피언 스타일이 충돌 없이 조화를 이루도록 했다. 아파트 특유의 붉은 체리목을 없애고 화이트 컬러를 기본으로 마감하고, 곳곳에 블랙 컬러를 적용해 전체적인 무게감을 주었다. 정돈된 공간에 악센트가 되는 개성적인 가구를 적절히 배치했는데, 고풍스러운 유럽풍의 책상, 시크하고 모던한 사이드 테이블, 와인 컬러의 소파, 우리나라 옛날 돈궤 등이 시선을 끈다. 이처럼 다양한 스타일의 가구를 함께 놓다 보면 자칫 이것저것 다 해보려는 욕심만 앞서 어느 쪽의 분위기도 살리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공간이 되고 마는데, 이 집은 전체적으로 안정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는 디자이너의 능력 못지않게 가구 하나, 소품 하나에 부부가 정성과 애정을 쏟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달 반 정도는 계속 디자이너와 함께 가구를 고르러 다녔습니다. 이태원, 신사동, 청담동 일대를 수시로 다녔지요. 우리가 마음에 들어 하는 가구나 소품은 디자이너가 말리고, 디자이너가 좋다고 하면 아내가 내키지 않아 하고, 그래서 세 사람 모두가 심사숙고해서 선택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이 나름대로 즐겁더군요. 트렌디한 인테리어 숍들을 직접 구경하고 새로 생긴 레스토랑에서 식사도 하고요. 발품을 판 덕분에 제품을 적절한 가격에 살 수도 있었죠.”
가구 못지않게 눈에 띄는 것은 곳곳의 그림과 조각상이다. 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은 박장준 씨가 갤러리를 찾아다니며 마음에 들어 산 그림, 우연히 인연이 닿은 화가에게 귀하게 얻은 그림, 여행 중에 구입한 조각상 등 얽힌 추억도 제각각이다. 화이트로 마감한 깨끗한 벽과 창으로 들어오는 화사한 자연광은 그림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할로겐 부분 조명등으로 그림을 강조하는 일반적인 연출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작품의 여운을 전하고 있다.
외국에서 공부 중인 아들을 제외하면 할머니, 부부, 딸의 단출한 네 식구인지라 그에 맞게 80평형대 아파트 구조를 절반 정도 변경했다. 크게 쓸모가 없는 여분의 방을 없애고 남편을 위한 서재, 부부를 위한 드레스 룸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의외로 적은 식구에 걸맞지 않게 다이닝 룸은 열 명도 너끈히 앉을 수 있을 만큼 넓다. 식탁도 무척 길다. 이는 교회 사람, 친척 등 항상 손님이 많은 이 집의 특성을 반영한 것. 거실에도 서로 다른 디자인의 소파와 방석을 넉넉히 마련해 두었다. 바, 욕실, 한실 등 용도가 확실한 공간의 인테리어를 다채롭게 연출한 점도 눈에 띈다. 푸른 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다이닝 룸 옆의 창가에는 부부가 차나 와인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작은 바를 만들었다. 심플한 화이트 커튼과 접이문이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욕실은 전체를 붉은빛 타일로 과감하게 연출했는데, 모로코 등과 금빛 프레임의 거울이 더해져 무척 화려하다. 덕분에 욕실에서의 시간을 한층 감성적으로 만든다. 할머니 방과 마주 보는 위치의 한실은 바닥을 높이고 천장에는 서까래를 연출한 뒤 한지 문을 달았다. 한옥 같은 고즈넉한 멋을 전하는데 한지 문 너머로 전실의 녹색 화분들이 살짝 들여다보여 정감 어리다. 현재 이 한실 방에서는 잠시 한국에 돌아온 아들 성원이가 머물고 있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만난 데다 새집을 본 성원이. 크게 표현하지는 않지만 쑥스러운 웃음과 함께 새집이 멋지다고 말한다. 촬영하던 날은 며칠 후면 다시 떠날 성원이를 만나러 온 친척들로 집이 떠들썩했다. 유러피언 스타일도 모던 스타일도 멋있겠지만, 드나드는 사람의 체온이 더해져 더욱 따뜻하고 달콤한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