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샘

아름다운 장례식

concert1940 2008. 8. 24. 01:25


 

  십 수 년 전이다. 뉴욕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서 급보가 날아들었다. 의과대학에 다니던 아들이 비명횡사를 했다는 비보였다. 부랴부랴 서둘러 비행기를 탔으나 겨우 발인하는 날에야 도착을 했다.

 

  늘 말로만 들었을 뿐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장의 예식장엘 들어섰다. 입구로부터 색색의 꽃으로 장식해 놓은 게 영결 식장이라기보다 결혼식장을 연상케 했다. 다만 하객들의 검은 의상과 무거운 장내 분위기로 이곳이 영안실임을 알리고 있었다. 버건디 색의 아름다운 관에 평상복을 입고 누워 있는 아이의 얼굴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듯 평화스럽게 보였다. 아이의 뺨을 쓰다듬어주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의식은 엄숙하지만 자연스러웠고 가족을 위로하는 문상객들의 모습은 참으로 부드럽고 정겨워 보였다.

 

 장례식엘 다녀온 후로 한동안 그때의 분위기를 좀처럼 잊을 수가 없다. 이곳저곳 영안실을 가게 될 때마다 혼잡스럽고 무질서한 우리네의 장례 절차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점점 진해지기 시작했다. 근래에는 집에서 상을 당해도 종합병원 영안실을 많이 이용함으로써 상가의 번거로움을 덜고는 있으나, 복잡한 것은 영안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얼마 전 모친상을 당한 친구의 상가를 찾은 일이 있다. 큰 종합 병원만은 못하다 해도 영안실 건너편으로 손님접대용 공간에 돗자리를 깔아 놓았는데, 마치 시장 통을 방불케 할 정도로 혼잡하기 그지없다. 음식이나 음료수조차 영안실에서 운영하는 것을 써야하며 상주들의 옷과 망인이 입어야할 수의까지도 그곳에서 구입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돗자리가 모자라 한 장을 더 가져오니 쫓아와 상주에게 자리 값을 받아 가는 직원을 보면서 여간 씁쓸하지 않았다. 상주의 까칠한 얼굴을 보는 순간 무엇인가 울컥 분노가 인다.

 

 이따금 내가 의욕이 넘치는 나이에 있다면 그래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름답고 우아한 장례식장을 만들고 싶다는 상상을 하곤 한다. 인간이 모태로부터 태어나 성장하고, 자신의 짝을 찾아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부모는 최선을 다해서 결혼 준비를 하며 예식장을 고르고 미래의 행복을 축복하며 호화로운 의식을 치르게 한다. 색색의 꽃으로 장식을 하고 최고의 분위기를 만들어 아이들의 앞날을 기원해 준다. 일생에 한번 있는 일이니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가, 그러나 이 한 쌍이 늙어 세상을 떠나갈 때는 어떠할까. 어쩌면 영원한 안식을 향해 떠날 때, 그때야말로 어느 순간보다도 아름다운 의식이 따라야 하지 않을까.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천재 모차르트의 죽음을 잊을 수가 없다. 시신을 묻을 묘지는 물론 관을 마련할 단 몇 푼의 돈이 없어 공동묘지 구덩이에 시신을 쏟아 넣고 빈 관을 실은 채 덜컹거리며 돌아가는 마차, 이 마지막 장면은 보는 이에게 가슴이 찢어지는 전율마저 일게 한다. 작자는 그의 빛나는 음악과 처절한 마지막 순간을 아이러닉하게 표현하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지금까지도 그를 숭배하고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한 가닥 혐오감만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싶다. 작자는 모차르트의 죽음을 비참하게 다루면서 우리에게 주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일까. 그 시대 가난한 자의 장례 의식의 단면을 떠올려보며 누구나 편리하게 사용될 수 있는 아름다운 장례식장이 더욱 절실해 짐을 금할 수 없다.

 

 고등학교 시절, 새벽 강의를 듣기 위해 종로엘 가려면 무교동에 있는 장의사 앞을 지나가야 했다. 온 머리털이 삐죽 삐죽 설 정도로 무섭고 떨려 눈을 딱 감고 뛰었다. 유리창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울긋불긋한 상여, 옷 칠을 해 놓은 검은 관들과 이상스런 모양의 집기들을 곁눈질해 보면서 섬뜩했던 기억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이런 두려움은 장의사 본래의 옛날부터 내려오는 관습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자(死者)를 음울하고 어두운 것으로 상징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장례식이라고 해서 어두운 색과 흰색만을 고집하는 우리네의 생각과는 달리 곱디고운 꽃으로 장식하여 떠나는 이의 마지막 길을 축복해 주는 서구의 장례 의식을 도입하여 아름답고 간소하며 멋스런 장례식장이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괜한 욕심일까.

 

  영원히 떠나가는 이를 위해 최고의 정성과 사랑을 부어 집전 되는 장례식, 간소하면서도 진정 유족을 위로하는 정겨운 분위기를 창출하는 멋진 장례식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