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샘

시 쓰는 대나무

concert1940 2008. 8. 24. 15:27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어있는 대숲을 찾은 적이 있다. 담양호를 중심으로 추월산과 금성 산성의 맥을 따라 펼쳐져 있는 대나무 숲을 바라만 봐도 선뜩 찬 기운이 몸에 와 닿는 듯하다. 어느 하나 휘거나 굽은 것 없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대나무들은 쉬쉬 서걱서걱 비밀스런 저들만의 이야기를 수런거린다.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숲에 서서 영원을 바라 서 있는 듯한 나무들을 한참 올려다보고 있자니 뒷목이 뻣뻣해온다.. 한 손으로 뻣뻣한 목을 주무르며 올려다본 긴 대나무들의 모습이 마치 옛 고고한 선비의 모습을 닮은 것 같다. 올곧고 서릿발 같은 정신이 엿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가슴속은 텅 비워 온갖 소리를 받아 안아주는 나무, 그 가슴에 받아 안는 것이 어찌 소리뿐이겠는가. 대나무는 가슴을 열어놓은 채 아마도 큰 속병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곳 대나무골 테마공원은 대나무를 주제로 조경 되었으며 봄이면 대밭에 땅 심을 뚫고 치솟는 죽순이 장관을 이루고 텃새들이 찾아와 알을 품는 서식지라고 한다. 청량한 대숲 바람 속에 죽림 욕을 즐길 수 있는 대밭 샛길과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 있다. 바람이 한바탕 휘돌아 날아가면 나무는 슥슥 석석 자신들만의 언어로 시를 읊는다. 키가 기다란 몸에 여린 이파리들을 달고 외유내강을 자랑하고 있지만, 마치 어린아이가 성장통을 앓으며 우람한 청년으로 변해가듯 그렇게 대나무는 끝없이 치솟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가슴을 열어 보일까/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네/ 메아리치는 아픔만 들릴 뿐/ 내 몸은 빈껍데기일지나/ 나를 사랑하는 파란 요정들이 있기에/ 나만의 고통을 노래하네. /
가슴을 열어 보일까/ 내 속에는 아무 것도 없네./ 말없는 바람만이 지나갈 뿐 / 메아리로 돌아오는 아픔만 들릴 뿐 /그래도 나는 시를 쓰련다. / 어린아이의 순전한 눈망울 같은/ 바위틈을 뚫고 졸졸 흐르는 물줄기 같은 / 그런 시를 쓰련다./ 마음이 격양되어 시 한수 흥얼거려 본다.

몸통을 온통 비워놓은 대나무,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있는 사내의 지조와 절개의 상징인 듯 고고한 품새에 어느새 옷깃을 여미게 되는데, ‘대쪽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불의나 부정과는 일체 타협하지 않고 지조를 굳게 지키는 사람을 기리지만, 어찌 대나무에 비할까보냐.
깊은 땅 속 대줄기에서 자라나는 어린 죽순은 마치 피침모양으로 뾰족하고 신비스런 결들로 겹겹이 쌓여있다. 비록 속은 허허롭지만 깊은 땅 줄기에서 연한 순을 잉태하는 나무, 그 죽순으로 만든 요리는 요식 계에 일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대나무로 만든 대금 소리는 온유한 숨결을 불어넣어 자신만의 소리를 창출하고 가슴 속 아픔까지도 시로써 읊어 주면서 아무도 범접할 수 없는 몸통에 긴 세월의 가락을 채우고 있다.

한참을 가니 어른 팔뚝만한 대나무들이 치솟아 숲을 이뤄 서있는 곳이 나온다. 이곳에서 드라마 <여름향기>와 영화 <청풍명월>을 찍었다는 게시판이 서 있다. 근래에는 영화촬영지가 여행지 선택의 우선순위에 속할 정도로 촬영 장소로,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안타까운 것은 자연세계가 훼손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고 한다.

우스스스 바람이 대나무자락을 스치며 지나간다. 파르르 떨며 인사하는 댓잎들이 정겹다. 곧잘 대나무의 기품과 소박함을 지나치게 우직한 사내와 비유하곤 하지만, 죽순을 대하고나면 그 올곧기만 한 대나무에게 이렇듯 부드러운 향기가 내재되어 있음이 놀랍기만 하다.

이따금씩 대숲을 찾고 나면 한바탕 내면의 찌꺼기들을 씻어내고 싶다. 대나무 몸통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살아가는 인생길에 감히 고통 따위가 찾아들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