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한동에 핀 코스모스/홍유경
태풍이 가시기를 기다리며 몇 날이 지났다. 일본을 강타하고 제주도에 머물러 있다는 태풍이 어서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포항에 살고 있는 넷째가 출산을 했다는 기별을 받은 지 사흘이나 지났는데, 다른 어미들처럼 오랫동안 산 관을 해주지는 못할지언정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도 갈 수가 없음이 안타깝다.
태풍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출발을 했다. 칠포 해수욕장이 한 눈에 들어오는 시골길은 별다른 세상에 와 있는 착각을 하게 한다. 아직은 어린 잣나? 소나무가 우거진 도로에서 바라보이는 바다, 구비치는 파도의 하얀 거품이 밀려오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높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마치 여인의 치마폭처럼 걸려 있는 산자락, 아직도 이런 곳이 남아 있었던가.
한쪽은 거대한 바다요 다른 한 쪽은 수목원을 방불케 할만 큼 울창한 나무숲을 이루고 있는 야산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서울 태생인 나는 포항이란 곳이 너무도 생소하고 신비스러울 정도로 경이로웠다. 아련히 ��릴 적 생각을 해 본다. 어머니는 소나무가 울창한 인왕산 초입까지 가셔서 송화를 따오시곤 했다. 나는 늘 어머니 뒤를 따라다니면서 송진을 뜯어 껌을 씹듯이 질겅거렸다.
고무를 씹는 것처럼 질기고 씁쓸했지만 그때는 씹을 거라곤 오로지 송진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따오신 송화에서 노란 가루를 털어 말려놓고 조청을 쑤시느라 마른 솔가지에 불을 땅겨 얼굴이 빨갛게 익도록 아궁이 앞에 앉아 계시던 어머니, 그 옆에 앉아서 부지깽이로 부엌 바닥에 곧잘 무언가를 그리곤 했다. 조청이 다 되면 송화다식을 만들어 이웃 여러 집에 나누시던 어머니, 내가 설사라도 하면 솔잎을 따다가 돌절구에 짓 쪄서 그 즙을 짜 먹이곤 하셨다.
소나무가 울창한 길목을 구불구불 한참동안 가는 길에 어머니 생각에 잠겨있다 보니 어느새 교정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한동대학교 주변은 거의가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쾌적한 환경에 공기마저 신선하다. 캠퍼스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사위가 설명하는 것을 들으며 저 만치 감자와 무밭이 있는 곳까지 가 보았다. 학생들이 농사를 지어 일군 밭에서 수확한 것을 어려운 이들에게 나누는 것이 학점에 인정된다고 한다. 과연 인성교육을 중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느 곳을 돌아보아도 햇볕에 반짝이는 갈대숲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거기에다 사이사이에 아무렇게나 씨가 날아다니며 심겨져서 활짝 웃고 있는 코스모스의 흐느낌이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내 감성을 자극한다. 차에서 잠깐 내려 갈대와 어우러진 코스모스와 들꽃을 꺾었다. 처음 대면 할 새 생명에게 할미의 마음을 전해주고 싶어서다.
아기가 깊이 잠든 동안에 딸 내외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곳에 와 있는 교수들 대부분이 외국인이거나 2세들로서 일반적 개념을 가진 사람들과는 그 생각의 차이가 많은 것 같다. 어떤 일이든지 자율적이요 홀로 서기를 학생들에게도 권장한다고 한다. 부모의 책임과 의무에서 역할까지, 그리고 자녀로서의 부모에 대한 기본 도리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그저 방관한다는 것이 아니라 부모로서 관심은 가지되, 자녀 스스로 깨닫고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미래를 설계해 나가는 것을 말함이다.
문득 조금 전에 만났던 대가 가늘고 나약한 코스모스를 떠올려 본다. 들꽃의 가녀린 줄기와 힘없이 꺾이는 갈대를 연상해본다. 바로 이것들을 가꾸고 정성스레 보살폈다면 튼실한 뿌리를 내리고 꽃대와 줄기는 근육질이 되어 굵고 튼실할 텐데, 쉽게 뿌리가 뽑히는 것은 어느 손길도 그들을 살피지 않았음을 말해줌이다.
한 사람의 인생길도 그러하다. 새 생명이 태어나 성장하기까지 부모의 책임은 막중하다. 아이의 미래를 미리 예비하여 아이에게 비전을 일깨워주고 그 일을 위해 뒤에서 후견인이 되어야 한다. 과잉양육이나 보호는 아이를 약하고 소심하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지만 방심과 무관심이 아닌 동기를 제공하여 영육이 강건해지도록 보살펴 준다면 그 양상은 달라지지 않을까.
인간은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을 부여받았다. 부모의 양상은 헤아릴 수없이 많은 모습들이 있고 또 그들의 가치관도 역시 서로 각각 다르다. 진정한 자유로움 속에는 절대의 질서가 내재되어 있음을 알려주는 것도 부모의 몫이다. 아무렇게나 자연스럽게 서 있는 소나무 잣나무 아가위나무들, 야생화 같을 수만은 없지 않을까. 길가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들꽃, 코스모스와 반짝이는 갈대는 보기엔 아름다울지 모르나 어느 누구도 상관하지 않는 무관심 속에서는 그저 나약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아기 방에 꽂아 놓은 갈대와 코스모스가 커다랗게 내게 다가온다. 그나마 힘없이 가늘고 약한 꽃대에 매달려 하얗게 웃고 있는 코스모스를 여지없이 꺾어 온 내 소견이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