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샘
성냥파는 소녀/고봉진
concert1940
2008. 9. 28. 18:03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 파는 소녀>를 내가 처음 읽었던 것은, 지금 어린이 기준으로 본다면 비교적 늦은 편인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48년 겨울이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여름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11월 초에는 대구에서 소위 '6연대 반란 사건'이란 것이 터졌었다. 그 전 달에는 전라도에서 '여순 반란 사건'이 발생하여 그 참담한 후유증이 채 가시기 전이었는데, 경상도에도 일부 군인들의 반란 사건이 또다시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 사건은 그리 큰 규모로 발전을 하지 않고 조기에 수습이 되었던 모양이다.
우리 집은 바로 그 사건이 일어난 후 얼마 되지 않은 초겨울에 경주에서 대구로 이사를 했다. 그때의 학제로는 9월에 새 학년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진학을 하고 몇 개월이 되지 않아서 전학을 한 셈이다.
그때 우리는 군인 가족도 아닌데, 어렸던 나로서는 무슨 사연이었던지 짐작할 수도 없었지만 ‘육군 관사’라는 곳에 임시로 입주를 했었다. 상수도 배수 시설이 있던 '수도산' 한쪽 자락인 나지막한 구릉 지대에 띄엄띄엄 세워진, 옛 일본군 장교와 가족들이 살던 집들 중의 한 채였다.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는 단지 입구에는 초소가 있었고, 겨우내 누런 군복 외투를 걸치고 총을 맨 군인이 24시간 교대로 보초를 섰다.
친척되는 어른 한 분이 우리 집에 들렀다가 밤에 모닥불을 피우고 서 있는 그 보초병을 보고는 "저렇게 지켜준다고 서 있지만 언제, 어떻게 변할는지 누가 알 수 있어야지." 하며 오히려 우리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듯한 말을 했다. 그토록 시국은 어수선했고,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어린 마음에도 불안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새로운 친구들이 생기기에는 기간이 너무 짧았던 탓도 있었지만, 사는 동네가 그렇게 일반 주택과 격리된 곳이다 보니, 겨울 방학이 되자 나는 언제나 외톨이었다. 그래서 그 해 겨울에는 집안에만 틀어박혀 책만 읽었다.
연말이 가까운 어느 날, 시 중앙통에 있는 서점에 가서 ≪소년≫ 12월호를 사 왔었다. 그 해 8월에 창간이 된 어린이 잡지였는데, 첫해부터 연재된 <꽃필 때까지>라는 소설이 너무 재미가 있어 꼬박꼬박 사 보던 것이었다. 그 달 표지에는 산타클로스가 뿔 달린 사슴들이 끄는 썰매를 타고 밤하늘을 날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어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고 오래간만에 온통 세상이 즐거움으로 넘쳐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그런데 엉뚱하게 그 책에서 <성냥 파는 소녀>를 처음 마주쳤던 것이다. 그 전에도 얇은 한 권의 책으로 된 ≪안데르센 동화≫를 읽은 적은 있었다. <인어 공주>라든지 <못난 오리 새끼> 같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뭔가 슬픈 이야기가 많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성냥 파는 소녀>는 실려 있지 않았었다.
잡지를 사온 날 밤, 사랑방에서 아버지 곁에 누워 뒹굴며 아름다운 삽화가 곁들인 그 이야기를 읽었을 때, 그때까지 읽은 다른 어떤 이야기보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씁쓸한 뒷맛이 따르는 것을 느꼈다.
성냥을 파는 가난한 맨발의 소녀가 섣달 그믐날 밤에 배고프고 언 몸을 골목 한구석에서 성냥불로 녹이려다가 죽어갔다는 짤막한 이야기지만, 그 기막힌 이야기를 그 잡지는 "소녀는 성냥 파는 아이였습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걸어다녔지만, 아아무도 아아무도 사 주지는 않고, 찢어진 일 원짜리 한 장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고, 군데군데 아주 영탄조로 그리고 그 일이 바로 그때 우리 나라 현실이나 되는 듯한 표현들로 옮겨 놓고 있었다. 하기는 그때만 해도 대구 같은 남쪽 지방에서조차 겨울이면 동사자(凍死者)가 흔히 나왔었고, 다리 밑에는 집 없는 노숙자가 거적을 치고 살고 있었다. <성냥 파는 소녀>는 먼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문 밖 길거리에서 겨울이면 일어나고 있던 그 당시 우리 나라의 현실이기도 했었다.
그 뒤로는 두고두고 어른이 되도록 연말이 다가오면 으레 그 이야기가 머리 속에 떠오르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고통을 당했다.
3, 4년 전인가 ≪소피(Sophie)의 세계≫라는 책이 돌연 온 세계의 초 베스트셀러가 되었었다.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친 적이 있다는 노르웨이의 한 작가 요스타인 고르데르(Jostein Gaarder)가 쓴 일종의 철학사 이야기인데, 마침 이웃 나라 여행중에 서점마다 요란한 선전 벽보가 나붙고, 점두(店頭)에 산처럼 쌓여 날개 돋힌 듯이 팔리고 있는 그 책을 보고 덩달아 한 권 사서 읽었었다. 그러나 다 읽고 나서도 왜 이런 종류의 책이 20세기도 다 저물어가는 이 시대에 그렇게 널리 읽히는지 까닭을 짐작할 수 없는 평범한 내용의 책이었다.
구태여 특이한 구석을 찾아본다면, 철학사라는 무미 건조한 이야기를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미스터리 풍의 소설 형식으로 서술한 점이다.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각 시대의 철학을 시대순으로 해설하는 화자(話者)와 그것을 듣는 소피라는 소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읽어갈수록 궁금해져서 책을 끝까지 놓지 못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 책 가운데 마르크스를 다룬 장에서 소피는 안데르센의 <성냥 파는 소녀>를 만난다. 바로 그녀가 마르크스가 살던 시대적 배경을 가장 잘 나타내는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다. 안데르센도 19세기 중엽 마르크스와 같은 시대를 살던 사람이다. 동화라는 장르를 통해 그가 살던 사회의 비참한 측면을 의식적으로 고발한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성냥 파는 소녀>는 그 당시의 시대상을 아주 잘 반영하고 있다.
작년 연말부터 시작된 국가 금융 위기로 나날이 실업자가 늘고 있어, 거의 사라졌던 생활고로 빚어지는 각종 사회 병리 현상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고 한다. 긴 장마로 썰렁한 여름을 보낸 올해는 여느 해보다 더 추운 겨울이 예상된다는데, 이번 겨울에 우리 사회에서도 <성냥 파는 소녀>가 다시 지난날의 남의 나라 동화 이상으로 의미를 갖게 될까 두렵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여름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11월 초에는 대구에서 소위 '6연대 반란 사건'이란 것이 터졌었다. 그 전 달에는 전라도에서 '여순 반란 사건'이 발생하여 그 참담한 후유증이 채 가시기 전이었는데, 경상도에도 일부 군인들의 반란 사건이 또다시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그 사건은 그리 큰 규모로 발전을 하지 않고 조기에 수습이 되었던 모양이다.
우리 집은 바로 그 사건이 일어난 후 얼마 되지 않은 초겨울에 경주에서 대구로 이사를 했다. 그때의 학제로는 9월에 새 학년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진학을 하고 몇 개월이 되지 않아서 전학을 한 셈이다.
그때 우리는 군인 가족도 아닌데, 어렸던 나로서는 무슨 사연이었던지 짐작할 수도 없었지만 ‘육군 관사’라는 곳에 임시로 입주를 했었다. 상수도 배수 시설이 있던 '수도산' 한쪽 자락인 나지막한 구릉 지대에 띄엄띄엄 세워진, 옛 일본군 장교와 가족들이 살던 집들 중의 한 채였다.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는 단지 입구에는 초소가 있었고, 겨우내 누런 군복 외투를 걸치고 총을 맨 군인이 24시간 교대로 보초를 섰다.
친척되는 어른 한 분이 우리 집에 들렀다가 밤에 모닥불을 피우고 서 있는 그 보초병을 보고는 "저렇게 지켜준다고 서 있지만 언제, 어떻게 변할는지 누가 알 수 있어야지." 하며 오히려 우리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듯한 말을 했다. 그토록 시국은 어수선했고,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어린 마음에도 불안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새로운 친구들이 생기기에는 기간이 너무 짧았던 탓도 있었지만, 사는 동네가 그렇게 일반 주택과 격리된 곳이다 보니, 겨울 방학이 되자 나는 언제나 외톨이었다. 그래서 그 해 겨울에는 집안에만 틀어박혀 책만 읽었다.
연말이 가까운 어느 날, 시 중앙통에 있는 서점에 가서 ≪소년≫ 12월호를 사 왔었다. 그 해 8월에 창간이 된 어린이 잡지였는데, 첫해부터 연재된 <꽃필 때까지>라는 소설이 너무 재미가 있어 꼬박꼬박 사 보던 것이었다. 그 달 표지에는 산타클로스가 뿔 달린 사슴들이 끄는 썰매를 타고 밤하늘을 날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어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고 오래간만에 온통 세상이 즐거움으로 넘쳐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그런데 엉뚱하게 그 책에서 <성냥 파는 소녀>를 처음 마주쳤던 것이다. 그 전에도 얇은 한 권의 책으로 된 ≪안데르센 동화≫를 읽은 적은 있었다. <인어 공주>라든지 <못난 오리 새끼> 같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뭔가 슬픈 이야기가 많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성냥 파는 소녀>는 실려 있지 않았었다.
잡지를 사온 날 밤, 사랑방에서 아버지 곁에 누워 뒹굴며 아름다운 삽화가 곁들인 그 이야기를 읽었을 때, 그때까지 읽은 다른 어떤 이야기보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씁쓸한 뒷맛이 따르는 것을 느꼈다.
성냥을 파는 가난한 맨발의 소녀가 섣달 그믐날 밤에 배고프고 언 몸을 골목 한구석에서 성냥불로 녹이려다가 죽어갔다는 짤막한 이야기지만, 그 기막힌 이야기를 그 잡지는 "소녀는 성냥 파는 아이였습니다.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걸어다녔지만, 아아무도 아아무도 사 주지는 않고, 찢어진 일 원짜리 한 장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고, 군데군데 아주 영탄조로 그리고 그 일이 바로 그때 우리 나라 현실이나 되는 듯한 표현들로 옮겨 놓고 있었다. 하기는 그때만 해도 대구 같은 남쪽 지방에서조차 겨울이면 동사자(凍死者)가 흔히 나왔었고, 다리 밑에는 집 없는 노숙자가 거적을 치고 살고 있었다. <성냥 파는 소녀>는 먼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문 밖 길거리에서 겨울이면 일어나고 있던 그 당시 우리 나라의 현실이기도 했었다.
그 뒤로는 두고두고 어른이 되도록 연말이 다가오면 으레 그 이야기가 머리 속에 떠오르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고통을 당했다.
3, 4년 전인가 ≪소피(Sophie)의 세계≫라는 책이 돌연 온 세계의 초 베스트셀러가 되었었다.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친 적이 있다는 노르웨이의 한 작가 요스타인 고르데르(Jostein Gaarder)가 쓴 일종의 철학사 이야기인데, 마침 이웃 나라 여행중에 서점마다 요란한 선전 벽보가 나붙고, 점두(店頭)에 산처럼 쌓여 날개 돋힌 듯이 팔리고 있는 그 책을 보고 덩달아 한 권 사서 읽었었다. 그러나 다 읽고 나서도 왜 이런 종류의 책이 20세기도 다 저물어가는 이 시대에 그렇게 널리 읽히는지 까닭을 짐작할 수 없는 평범한 내용의 책이었다.
구태여 특이한 구석을 찾아본다면, 철학사라는 무미 건조한 이야기를 환상과 현실이 뒤섞인 미스터리 풍의 소설 형식으로 서술한 점이다.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각 시대의 철학을 시대순으로 해설하는 화자(話者)와 그것을 듣는 소피라는 소녀의 정체가 무엇인지 읽어갈수록 궁금해져서 책을 끝까지 놓지 못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 책 가운데 마르크스를 다룬 장에서 소피는 안데르센의 <성냥 파는 소녀>를 만난다. 바로 그녀가 마르크스가 살던 시대적 배경을 가장 잘 나타내는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다. 안데르센도 19세기 중엽 마르크스와 같은 시대를 살던 사람이다. 동화라는 장르를 통해 그가 살던 사회의 비참한 측면을 의식적으로 고발한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성냥 파는 소녀>는 그 당시의 시대상을 아주 잘 반영하고 있다.
작년 연말부터 시작된 국가 금융 위기로 나날이 실업자가 늘고 있어, 거의 사라졌던 생활고로 빚어지는 각종 사회 병리 현상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고 한다. 긴 장마로 썰렁한 여름을 보낸 올해는 여느 해보다 더 추운 겨울이 예상된다는데, 이번 겨울에 우리 사회에서도 <성냥 파는 소녀>가 다시 지난날의 남의 나라 동화 이상으로 의미를 갖게 될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