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샘
시집(詩集 )한권 없는 당신에게/김우종
concert1940
2008. 9. 28. 18:09
이렇게 조용한 계절이 다가오면 우리는 또 당신의 모습을 그려보게 됩니다. 산과 들이 모두 은빛으로 단장하는 계절, 그래서 죽음처럼 고요가 깃들 무렵이 되면 당신은 언제나 그 우스꽝스러운 털모자를 쓰고 우리 마을까지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난롯가에 모여 앉은 우리들에게 온종일 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것은 대개가 당신의 추억담이었지요. 당신의 젊은 날을 회고해 보는 이야기들, 그러나 우리들은 그것을 당신 혼자만의 추억담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해 본 일이 없습니다. 왜냐면 당신의 젊은 날의 기억들, 그것은 곧 우리 민족의 역사요 그 증언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젊은 시절에 서당을 세워 놓고 밤마다 우리글을 가르치던 일, 그러다가 무슨 사건이 일어난 후 서당 문을 닫고 당신은 멀리 떠나야 했던 일, 그것은 언제 들어도 우리들의 마음을 슬프게 해주는 우리 민족의 추억담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당 문을 닫던 날 동네의 어린이들로부터 할아버지들까지 모두 나와 마지막으로 우리 글공부를 하다가 모두 울어 버렸다는 것.
당신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돌아간 뒤면 우리는 오늘의 이 현실이나마 얼마나 복된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다시 한번 오늘 사는 보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항상 용기를 주고, 앞을 내다볼 지혜를 일러주고 하는 당신에게 늘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조용한 계절이 다가오면 오버 깃을 올리고 우스꽝스러운 털모자를 쓰고 우리들을 찾아 주던 당신, 그런데 어느 날 당신을 이렇게 경멸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옛날부터 시(詩)를 썼다고 하지만 시집 한 권 없는 사람이라고, 또 당신은 수필을 매일같이 쓴다고 하지만 수필집 한 권 없는 사람이라고, 또 당신은 아는 것이 많은 것처럼 어디 가서나 큰 소리를 치지만 신문 잡지에는 1년에 한두 번 얼굴을 내미는 것이 고작이고 저서 한 권도 없다고, 그래서 당신은 지식인도 아니요 시인도 아니요 수필가도 아니라고. 이렇게 당신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런 말을 여러 사람에게서 들을 때 우리들은 슬픔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찌 시집을 내야만 시인이요, 수필집을 내야만 수필가일까요? 또 어찌 신문이나 잡지에 자주 얼굴을 보여야만 지식인일까요? 매스컴을 통한 등장의 빈도수, 그것으로 지식인의 자격을 측정한다는 것, 그것은 너무도 무지한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잘나면 그만큼 신문, 잡지에 오르내릴 기회도 많아지겠지요! 하지만 또 반드시 그런 것만이 아니기 때문에, 또한 시집을 내고 저서를 내는 경우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런 출판 업적과 그가 시를 쓰고 연구를 한다는 것, 여기에 무슨 필연적 관계가 있겠습니까?
평생을 시집 한 권도 못 가진 당신, 저서 한 권 없는 당신, 그러나 우리는 당신이 누구보다도 참된 시인이요, 우리를 이끄는 지식인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진정으로 순수하게 오직 쓰고 싶은 시를 쓰는데 그칠 따름이요, 아무 대가도 없이 우리를 가르치는 데 그칠 따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신문과 시집을 통해서 얼굴을 보이는 것, 그것은 곧 대중집단과의 대화를 의미하겠습니다. 되도록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려면 매스 미디어의 힘을 빌어야겠지요. 시집을 내는 것도 그렇겠지요.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읽히려면 시집을 내야겠지요. 그렇지만 그래야만 시인이 되고 그래야만 지식인이 된다고 믿는 것, 그것처럼 어리석은 생각은 없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시인은 여러 사람에게 읽히기 위해서만 시를 쓰는 건 아니잖겠습니까? 지식인은 여러 사람에게 일러주기 위해서만 아는 바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잖겠습니까? 단 몇 사람인들 어떻겠습니까?
흰눈이 온 세상을 잠재우는 계절, 이렇게 고요한 계절이 되면 당신은 먼 길을 돌아서 해마다 우리에게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시를 읽어주고, 당신만이 아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돌아가고 나면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가슴에 다시 한번 희망과 용기를 얻고, 오는 봄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진정한 지식인이라면 듣는 사람의 수를 헤아리지 않는다는 것, 진정한 시인이라면 귀 기울이는 사람의 수를 따지지 않는다는 것, ―당신은 그처럼 참된 시인이요 참된 지식인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생각이 나는군요. 그 시대에도 신문, 잡지, 라디오가 있었으면 소크라테스는 어떻게 처세했을까요? 그 역시 그런 것을 빌려서 말해야만 자기의 지식인의 자격이 선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리고 아무리 많이 알더라도 그런 힘을 안 빌리면 말을 아니 했을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는 그런 속물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는 젊은 청년 단 하나를 붙들고도 늘 긴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참된 지식인이었다는 건 거기서도 발견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아는 바 진리를 일러주는 상대방이 하나면 어떻고 둘이면 어떻겠습니까?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라도 자기의 신념을 말하고, 남에게 밝은 지혜를 일러주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참된 지식인이 아니겠습니까?
난롯가에 모여 앉은 우리 젊은이들을 찾아와 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가는 당신, 그 모습에서 우리는 소크라테스 같은 진실한 인간상을 생각하게 됩니다. 비록 시집 한 권 없고, 저서 한 권 없지만, 항상 시를 쓰고 항상 우리들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고 가는 당신, 그대야말로 진정한 시인이요 이 나라의 지식인입니다.
이제 또 흰 눈이 온 세상에 찬란한 소복을 입힐 계절입니다. 당신의 시와 그 목소리가 그립군요. 그 참된 시인의 시, 지식인의 가르침이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다시 한번 충만해지기를….
당신이 젊은 시절에 서당을 세워 놓고 밤마다 우리글을 가르치던 일, 그러다가 무슨 사건이 일어난 후 서당 문을 닫고 당신은 멀리 떠나야 했던 일, 그것은 언제 들어도 우리들의 마음을 슬프게 해주는 우리 민족의 추억담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당 문을 닫던 날 동네의 어린이들로부터 할아버지들까지 모두 나와 마지막으로 우리 글공부를 하다가 모두 울어 버렸다는 것.
당신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돌아간 뒤면 우리는 오늘의 이 현실이나마 얼마나 복된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다시 한번 오늘 사는 보람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항상 용기를 주고, 앞을 내다볼 지혜를 일러주고 하는 당신에게 늘 진심으로 감사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조용한 계절이 다가오면 오버 깃을 올리고 우스꽝스러운 털모자를 쓰고 우리들을 찾아 주던 당신, 그런데 어느 날 당신을 이렇게 경멸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옛날부터 시(詩)를 썼다고 하지만 시집 한 권 없는 사람이라고, 또 당신은 수필을 매일같이 쓴다고 하지만 수필집 한 권 없는 사람이라고, 또 당신은 아는 것이 많은 것처럼 어디 가서나 큰 소리를 치지만 신문 잡지에는 1년에 한두 번 얼굴을 내미는 것이 고작이고 저서 한 권도 없다고, 그래서 당신은 지식인도 아니요 시인도 아니요 수필가도 아니라고. 이렇게 당신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런 말을 여러 사람에게서 들을 때 우리들은 슬픔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찌 시집을 내야만 시인이요, 수필집을 내야만 수필가일까요? 또 어찌 신문이나 잡지에 자주 얼굴을 보여야만 지식인일까요? 매스컴을 통한 등장의 빈도수, 그것으로 지식인의 자격을 측정한다는 것, 그것은 너무도 무지한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잘나면 그만큼 신문, 잡지에 오르내릴 기회도 많아지겠지요! 하지만 또 반드시 그런 것만이 아니기 때문에, 또한 시집을 내고 저서를 내는 경우도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런 출판 업적과 그가 시를 쓰고 연구를 한다는 것, 여기에 무슨 필연적 관계가 있겠습니까?
평생을 시집 한 권도 못 가진 당신, 저서 한 권 없는 당신, 그러나 우리는 당신이 누구보다도 참된 시인이요, 우리를 이끄는 지식인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진정으로 순수하게 오직 쓰고 싶은 시를 쓰는데 그칠 따름이요, 아무 대가도 없이 우리를 가르치는 데 그칠 따름이었기 때문입니다.
신문과 시집을 통해서 얼굴을 보이는 것, 그것은 곧 대중집단과의 대화를 의미하겠습니다. 되도록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려면 매스 미디어의 힘을 빌어야겠지요. 시집을 내는 것도 그렇겠지요. 되도록 많은 사람에게 읽히려면 시집을 내야겠지요. 그렇지만 그래야만 시인이 되고 그래야만 지식인이 된다고 믿는 것, 그것처럼 어리석은 생각은 없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시인은 여러 사람에게 읽히기 위해서만 시를 쓰는 건 아니잖겠습니까? 지식인은 여러 사람에게 일러주기 위해서만 아는 바를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잖겠습니까? 단 몇 사람인들 어떻겠습니까?
흰눈이 온 세상을 잠재우는 계절, 이렇게 고요한 계절이 되면 당신은 먼 길을 돌아서 해마다 우리에게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시를 읽어주고, 당신만이 아는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돌아가고 나면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가슴에 다시 한번 희망과 용기를 얻고, 오는 봄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진정한 지식인이라면 듣는 사람의 수를 헤아리지 않는다는 것, 진정한 시인이라면 귀 기울이는 사람의 수를 따지지 않는다는 것, ―당신은 그처럼 참된 시인이요 참된 지식인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생각이 나는군요. 그 시대에도 신문, 잡지, 라디오가 있었으면 소크라테스는 어떻게 처세했을까요? 그 역시 그런 것을 빌려서 말해야만 자기의 지식인의 자격이 선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리고 아무리 많이 알더라도 그런 힘을 안 빌리면 말을 아니 했을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는 그런 속물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는 젊은 청년 단 하나를 붙들고도 늘 긴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소크라테스가 참된 지식인이었다는 건 거기서도 발견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아는 바 진리를 일러주는 상대방이 하나면 어떻고 둘이면 어떻겠습니까?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라도 자기의 신념을 말하고, 남에게 밝은 지혜를 일러주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참된 지식인이 아니겠습니까?
난롯가에 모여 앉은 우리 젊은이들을 찾아와 긴 이야기를 들려주고 가는 당신, 그 모습에서 우리는 소크라테스 같은 진실한 인간상을 생각하게 됩니다. 비록 시집 한 권 없고, 저서 한 권 없지만, 항상 시를 쓰고 항상 우리들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고 가는 당신, 그대야말로 진정한 시인이요 이 나라의 지식인입니다.
이제 또 흰 눈이 온 세상에 찬란한 소복을 입힐 계절입니다. 당신의 시와 그 목소리가 그립군요. 그 참된 시인의 시, 지식인의 가르침이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 다시 한번 충만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