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잘 익은 사람

concert1940 2009. 3. 2. 09:16

 
성현께서 고향을 방문한다는 전갈이 왔다.
고을 전체가 들먹였다.
도지사..군수..면장..경찰서장..종교 성직자들
이름 석 자 날리는 사람들...빽빽히 몰려들고, 
큰 성현을 보려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드디어 마을 어귀에 성현의 일행이 나타났다.
일산(日傘: 해가리개) 아래의  성현은
먼 발치에서 보아도 덕성이 풍부하고 인자함이 엿보였다.
모든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라고 예의를 표하였다.
이때,
한 노파가 지팡이에 의지한 채 성현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이렇게 소리쳤다.
"야, 너 아랫마을 개똥이구나?
큰 어른이 온다고 해서 얼굴 보려고 나왔더니 바로 너란 말이냐.
어려서 공부도 못하고, 콧물 질질 흘리던 네가 큰 어른이라니
괜히 나왔구나. 깔깔깔...."
장내는 순식간에 썰렁한 분위기로 바뀌고.
도지사를 비롯한 유지들이 성현을 향해
죄송해서 몸 둘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나 역시다.
큰 어른은 어디가 달라도 달랐다.
"여러분은 나를 환대하고 받들고 있지만,
나를 이렇게 만든 분이 바로 이 할머니입니다.
내가 어릴 적....
코 흘리지 말라고 야단치시고, 공부 잘하라고 늘 꾸짖어 주시고
배 곯지 않았냐며 누렁지를 한 웅큼 쥐어 주시곤 했습니다.
이 할머니 덕분에 오늘의 제가 있는 것이지요."
걸음을 독촉하여,
그 할머니를 향해 큰 절을 올린 성현은
할머니를 등에 업고 사람들 사이를 한 바퀴 돌면서 
"할머님 몸이 새털 보다 가볍다."
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청산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