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영웅이 된 음악인들
국가적 영웅이 된 음악인들
폴란드 고향에 세워진 Rubinstein's 조각 Kubelik이 Ma Vlast(나의 조국)를
지휘하는 장면
많은 음악인들은 오랜 세월 자기 고향과 조국을 떠나 타국에서 음악인으로서 활동하다가 조국으로 돌아가 국민들로부터 영웅적 환영을 받았다.
19세기에는 Chopin과 Liszt가 일찍이 고국인 폴란드와 헝가리를 떠나 파리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그러나 쇼팽은 러시아의 폴란드 지배를 반대하여 망명의 길을 택하여 조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파리에서 병사했다. 장수한 리스트는 부다페스트로 돌아가 음악원장을 지내면서 국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마지막 인생을 보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Arthur Rubinstein(1887-1982)이 11살의 어린나이에 조국인 폴란드를 떠나 베를린으로 음악공부를 위해 떠났으며 파리, 런던, 스페인, 남미 그리고 미국에서 세계최고의 피아니스트로 등장하였다.
그는 열일곱 살 때 집안이 어려워지자 베를린에서의 음악공부를 포기하고 떠돌이 생활을 하였으며 스무 살 때에는 베를린에서 갈 곳도 없고 숙박비도 지불할 수 없는 신세가 되자 자살까지 시도 했으나 이것에 실패하자 제2의 인생을 찾아 세계적 피아니스트가 된 사람이다.
음악공부를 제대로 마치지 못한 그는 연습도 소홀히 하는 편이였으며 기술적으로 뛰어난 피아니스트는 아니었으며 와인, 시가 그리고 여자를 좋아하기로 이름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뛰어난 음악성 즉 기질(temperament)과 끼(showmanship)로 관중들을 매혹시켰으며 20세기 초반의 가장 인기 있는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그는 오랜 세월의 외국생활을 마치고 1975년, 88세의 나이에 자기의 출생지인 폴란드의 로즈(Lodz)로 돌아가 폴란드 국민들의 영웅의 환영을 받으며 연주를 하였다. 그가 95세의 나이에 서거한 후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폴란드정부는 루빈스타인의 부인과 네 자녀를 초대하여 국가적 영웅이 된 루빈스타인의 탄생 100주년을 성대히 기념하였다. 그 후 그는 미국대통령으로부터 자유의 훈장(Medal of Freedom)을 수여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