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행 열차 / 김옥진
‘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 된 일이다 /조그마한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애틋이 숨어 있는 쓸쓸한 아름다움/하마터면 모를 뻔하다’/ 중략
허영자님은 나의 학교 선배로서 교분이 있었던 분이고, 오래 전 우리 애들이 어렸을 때, 추운 겨울날 박물관을 데리고 갔었을 때 전철에서 만나 ,애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한참이나 건네주었던 분이라 기억에 남는 분이다. 그래서 애들도 성인이 된 요즈음도 그 분, 하고 떠올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그때로부터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는 지금 37년의 교직생활을 마감하려 퇴임신청을 내놓고 있는 이즈음이다. 그동안 바쁘게만 살았던 내 삶이 이 완행열차가 주는 여유와 완만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명예 퇴임 신청 소식을 들은 선배 동료들은 아쉬움을 표하기도 하고 얼마나 좋으냐고들 하기도 하지만 많은 생각 끝에 내린 결단이라 정작 나는 학교생활 하루하루가 석양의 노을 빛 같아서 소중해지는 요즈음이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앞만 보고 달려온 삶이다. 그리고 지금껏 학교가 내 인생의 전부라고 여기며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바쁘게 참으로 바쁘게, 옆을 살필 여유도 없이 서두름의 연속으로 살아온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특기가 뭐든지 빨리 하는 것이 주종 종목이 되어 버렸다. 요즘처럼 시시시각, 시간을 다투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그렇다, 적은 시간으로 많은 일을 처리하는 것은 경제 원칙으로 친다면 최선이니까. 학교 일이라는 것이 빤히 정해진 일이라고 하지만 하는 일이 참으로 많다. 하루하루 제출해야할 서류며, 공문처리며, 애들 가르치는 학과 진도가 늘 나를 붙잡고 있다. 이일 다음에 이것, 늘 머릿속은 해야 할 일들로 순서가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나서 퇴근쯤이면 또 한 번 집안일로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지금이야 맞벌이가 일상화 되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못했다. 무엇을 해 먹어야 할지도 또 문제이다. 나는 결혼 처음부터 대가족과 어울려 살았고, 그러기에 교직에 있으면서도 애들을 셋이나 낳고 키울 수 있었지만, 반면에 내 생활은 늘 끓고 있는 냄비와 같아 조금의 여유도 없이 늘 서두름의 연속이었고, 바쁘지 않을 수 없었다.
빠름은 나의 최저 생활 유지를 위한 내 삶의 대처 방법이기도 했다. 집에 오면 가스레인지 네 쪽에 한쪽은 찌개나 국 . 한쪽은 반찬 한두 가지 , 밑에서는 생선구이, 그 사이 세탁기를 돌려놓고 끓는 사이 청소기를 돌리고, 한 번에 두세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며 돌리고 휘돌았다. 그래야 애들에게 제 시간에 밥 먹이고, 하루 종일 애들 보시느라 애쓰신 시부모님께 저녁상을 성의 있게 차려드리고, 물론 도우미 아주머니 도 계셨지만, 이어 애들 하루생활 얘기를 들어주고...... 아이들은 엄마갈증에 시달리는 터라 오랜만에 보는 엄마에게 서로 먼저 얘기 하겠다고 다툼을 하기에 순서를 정해 놓고 돌아가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러면 샘이 많던 둘째는 기다리는 동안 자기가 할 얘기를 까먹는다고 징징거렸다.
그러면서 나는 일생을 학교만 다닌 셈이다. 전반기는 배우러 학교에 다녔고 그 다음은 졸업 다음날부터 출근을 하여 지금에 이르렀으니 어찌 보면 참으로 답답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교직생활을 이십대 초반기부터 시작하여 처음에는 학교가 나를 옥죄는 것 같고, 학교의 네모난 공간이 나를 늘 억누르는 것 같아, 늘 밖을 동경했다. 그 시절 출근하려고 버스를 기다리다가 다른 방향 버스가 오면 그걸 타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유혹에 시달리곤 했다. 아쉽게도 잘한 일인지 못한 일인지 몰라도 여태껏 한 번도 그 유혹을 실천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으니 잘했다고 해야 할 지 못했다고 해야 할 지 지금도 판단이 안 선다. 그 후 나는 학교는, 교실은, 내 우주이며 전부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면서 충실하려 애를 썼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늘 가까이 할 수 있어서 가능했고. 혼자서 글을 쓰는 시간을 늘 엿보며 살았기에 그러했다. 내가 학교일이든 집안일이든 늘 빠르게 처리한 이면에는 늘 나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취한 내 대처방안이었음을 이제와 고백한다. 빨리 처리하고 남은 시간에, 책을 한 권이라도 더 읽고, 내가 쓸 수 있는 문장을 한 구절이라도 떠올릴 것을 목말라했기에 그러했음을 또 한 번 고백한다. 학교 애들에게 독서 지도하는 틈에 나의 독서에 빠져들었고. 애들이 글쓰는 틈에 나만의 글을 모색했다. 늘 틈새를 노리는 나의 글쓰기 작업은 스릴을 느끼게하면서 행복을 주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옛말대로 나에게도 행운이 찾아와 주었다. 나를 본격적으로 책을 읽고 글 쓰는 작업으로 끌어준 선배님과 선생님이 계셨기에 요즈음 성취감에 잠겨 그 숱한 세월을 추억하며 지내고 있으며 희망으로 부풀어있다. 나는 그동안 바쁘다는 미명아래 귀중한 나의 많은 것들을 얼마나 지나치며 살았던가가 뼈저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아침에 허영자님의 시 완행행차의 첫 구절을 내가 개작해 본다. 급행열차를 놓친 것이 아니라 '급행열차를 놓아버린 것은 잘 된 일이다/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 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애틋이 숨어있는 쓸쓸한 아름다움/ 이제는 알게 될거야'/ 중략
참으로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애틋이 숨어있는 쓸쓸한 아름다움’ 속에 있는 법이니. 나의 퇴임 후의 삶은 완행열차를 타고 곳곳에 숨어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발견하며 느끼며 체험하는 일이다.
'서러운 종착역은 어둠에 젖어/거기 항시 기다리고 있거니/천천히 아주 천천히/누비듯이 혹은 홈질하듯이/서두름이 없는 인생의 기쁨/하마터면 나 모르뻔 하였지/ .
이제는서두름이 없는 인생의 기쁨을 누리며 그 다음 일은 마음이 가는 세상을 찾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