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 음악이야기
리스트 초기생애
concert1940
2011. 4. 19. 10:44
리스트의 아버지인 아담 리스트는 니콜라스 에스테르하지 공을 모시던 관리로 그가 거주하던 아이젠슈타트 궁정에는 요제프 하이든, 루이지 케루비니, 요한 후멜 등 유명한 음악가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재능있는 아마추어 음악가였으며, 궁정 연주회에서 첼로를 연주했다. 리스트는 5세 때 이미 피아노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으며 곧 아버지로부터 레슨을 받았다. 교회음악과 집시 음악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으며, 아버지의 영향으로 프란체스코 수도원에서 2년을 보내는 등 종교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다.
일찍이 8세에 작곡을 시작했고, 9세 때 쇼프론과 포조니(지금의 체코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서 피아니스트로서 처음으로 공개 연주회를 가졌다. 그의 연주에 감동을 받은 헝가리 귀족들은 기금을 모아 리스트로 하여금 이후 6년간 음악 교육을 받도록 했다. 공직에서 휴직한 아버지의 인도로 빈에 가서 베토벤의 제자이며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였던 카를 체르니로부터 피아노 레슨을 받게 되었고, 빈 궁정의 음악감독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 작곡 레슨을 받았다. 빈에서 가진 리스트의 연주회는 대성공이었다. 연주회에 참석한 베토벤이 어린 신동의 이마에 입맞추었다는 유명한 이야기는 실제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리스트가 베토벤을 만난 것만은 분명하다.
1823년 리스트는 가족과 함께 파리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계속해서 연주회를 열었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파리 음악원 입학을 거절당했고, 대신 하이든의 형제인 미하엘의 제자이며 음악이론가였던 안톤 라이하와 파리 테아트르 이탈리엔 극장의 음악감독이자 경가극 작곡가였던 페르디난도 파에르에게 배웠다. 1824년 3월 7일 파리 데뷔에서 사람들로부터 극찬을 받았고, 이후 계속해서 파리 연주회와 영국 방문 연주회를 열었다. 이듬해 영국을 다시 방문하여 윈저 성에 있는 조지 4세 앞에서 연주를 했고, 맨체스터에서는 〈새로운 대서곡 New Grand Overture〉을 초연했다. 이 곡은 그 자신이 지은 단막 오페라 〈동 상슈 Don Sanche〉(〈사랑의 성 Le Château d'amour〉이라고도 함)의 서곡으로 만든 것인데 1825년 10월 17일 파리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1826년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순회 연주한 뒤 다음해 영국에 다시 돌아왔다. 신경쇠약증에 시달렸던 리스트는 신부가 되고 싶다는 뜻을 나타냈다. 그를 불로뉴 해변으로 데려가 요양을 시키던 아버지는 그곳에서 장티푸스로 죽었다. 파리로 돌아온 리스트는 어머니와 함께 지내기를 원했지만 어머니는 잠시 그의 곁에 머물다가 리스트가 순회공연중 오스트리아의 스티리아로 다시 돌아갔다.
리스트는 주로 피아노 교습으로 생계를 꾸려나가게 되었고, 1828년 제자 중의 한 사람과 사랑에 빠졌으나, 제자 아버지의 반대로 또다시 심한 신경쇠약증에 걸렸다.
거의 죽을 지경에까지 이르러 그의 사망 부고(訃告)가 신문에 실릴 정도가 되었다. 건강을 회복한 뒤에도 오랫동안 우울증에 시달렸고 이제까지의 음악 활동에 회의를 느꼈다. 1년 이상 피아노에 손을 대지 않았고, 신부가 되고자 하는 뜻이 어머니에 의해 계속 좌절되어 종교적 염세주의를 경험했으며 화려한 연주 활동을 혐오하게 되었다. 폭넓은 독서와 알퐁스 드 라마르틴, 빅토르 위고, 하인리히 하이네 등 당대 위대한 예술가들과의 만남으로 부족한 교육을 보충했다. 1830년 7월 혁명 때 샤를 10세가 왕위에서 내려오고 루이 필리프가 새로 왕위에 오르게 되자 〈혁명교향곡 Revolutionary Symphony〉의 초안을 썼다.
1830~32년 리스트는 그의 예술에 커다란 영향을 주게 될 세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1830년말 엑토르 베를리오즈를 만나 그의 〈환상교향곡 Symphonie fantastique〉의 초연을 듣게 된 그는 베를리오즈로부터 관현악법과 악마적 표현을 배웠고, 이후로도 많은 영향을 받게 되었다. 1833년 〈환상교향곡〉을 피아노곡으로 편곡하는 놀라운 일을 해냈고, 베를리오즈의 다른 작품들도 피아노곡으로 편곡하여 직접 연주했다. 1831년 3월 2번째로 만난 사람은 니콜로 파가니니인데, 그의 연주를 접한 리스트는 장인적 연주에 흥미를 느낀 나머지 파가니니의 환상적인 바이올린 효과를 피아노로 표현해낼 것을 결심했고, 실제로 파가니니의 〈종 La Campanella〉 주제에 의한 환상곡을 작곡했다. 3번째로 만난 사람은 프레데리크 쇼팽으로, 그의 시적인 음악 양식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