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없는 봄날 / 김옥진
대책없는 봄날
오늘은 오랜만에 무거운 외투를 벗어놓고 집을 나섰다. 벌써 우수 경칩도 다 지나고 봄기운이 완연하다.
어제는 임영조 시인에 관한 글을 읽다가 친구들과 나눠 읽고 싶어서 이 글을 올린다.
임영조 시인은 1943년에 태어나 2003년에 돌아가신, 충청도 보령 사람인데, 미당 선생님께서 귀가 잘 생겼다고 ‘이소’라는 필명을 주셨다고 한다. ‘귀로 웃는 사람’이라는 뜻이겠지만, 가는귀가 먹어서 늘 말을 눈으로 들었다고 하나, 정말 가는 귀가 먹어서일까? 귀로 듣지않고 눈으로 듣는다는 뜻은 가슴으로 듣는다는 말과 같다. 가슴이 따뜻한 시인일까?
그는 ‘시인의 모자’라는 글 속에 시인은 ‘한 평생 제 영혼을 헹구는 사람’이라고 표현 했다. 아름다운 영혼으로 써진 시들을 자주 접하면 우리의 영혼도 어쩌면 절로 헹궈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 분의 여러 시들 중에 이 ‘대책 없는 봄날’은 너무나 재미있어 소개한다.
“ 얼마 전 섬진강에서 가장 이쁜 매화년을
몰래 꼬드겨서 둘이 야반도주를 하였는데요.
그 소문이 매화골 일대에
쫘악 퍼졌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도심의 공원에 산책을 나갔더니
아, 거기에 있던 꽃들이 나를 보더니만
와르르 웃어젖히는데 어찌나 민망하던지요.
거기다 본처 같은 목년(목련!)이
잔뜩 부은 얼굴로 달려와
기세등등하게 널따란 꽃잎을
귀싸대기 때리듯 날려대지요
옆에 있는 산수유년은
말리지도 않고 재잘대기만 하는 품이
꼭 시어머니 편드는 시누이년 같아서
얄밉기만 하고요.
개나리도 무슨 일이 있나 싶어 꼼지락 거리며
호기심어린 싹눈을 내미는데요.
아이고 수다스런 고년들의 입심이 이제
꽃가루로 사방 천지에 삐라처럼 날리는데요,
이 대책 없는 봄을 어찌해야겠습니까요.“
뜰 앞에 피어날 꽃들을 상상하며 이 글을 읽으니 나 혼자 비실비실 웃음이 빠져나오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