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좀 들어주실래요?
“당신은 왜 여기 서 있는 거요?”하고 묻는 이들이 있다면 나는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830살이나 된 고령의 내가 서초동 장승이 되어 문지기로 서 있다고 할까요.
누군가는 서초동을 모르는 이에게 “ 아 왜 국보 향나무가 서 있는 데 말이야, 거기서부터 서초동이야.” 하고 말하곤 하지요. 그러나 나는 국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싱싱한 보통 나무이고 싶을 뿐 이지요.
이른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숨쉬기가 정말 두렵습니다. 내가 서 있는 양 갈래 길로 주차장처럼 빽빽이 차들이 줄을 서 있는데, 저마다 뱉어내는 가스가 내 얼굴이며 몸을 뒤덮기 때문이지요. 이 자리에서 800년을 넘게 살아왔지만 이젠 몸을 지탱하기에도 힘이 듭니다.
이곳은 원래 서초동 꽃마을이 있던 곳이에요. 동서남북에 온통 꽅 냄새가 날아다니는 늘 푸르러 공기가 맑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답니다. 서초동은 예로부터 서리풀이 무성해 ‘상초리(霜草里)’ 또는 ‘서리풀’이라 불렀지요. 서리가 내리면 익는 상서로운 풀(瑞草)이란 바로 ‘벼’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곳에서는 쌀이 많이 났다고 합니다. 좋은 냇물(良才川)의 물을 길어다가 쌀(瑞草洞)로 떡(盤浦洞)을 빚어 사당에서 조상과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풍수적으로 뛰어난 명당자리라고 하여 자부심이 대단한 동네지요.
이 마을을 대표하는 인물로는 조선 명종 때의 문신이 상진(尙震)선생이 있는데, 조선시대의 4대 정승으로 추앙될 만큼 인품이 뛰어나 청백리로도 유명한 분이었답니다.
세월이 흐르니 모든 것은 변화되어 꽃마을로 불리던 이곳은 자동차천국 매연천국이 되어버렸어요. 서울시가 나를 보호수로 지정 해놓고 관리를 한다고 하지만, 하나도 반갑지 않아요. 하루 종일 시커먼 연기를 마시고 죽어가고 있으니까요. 맑은 시내가 흐르고 새들이 지저귀는 공기 맑은 곳이 그립기만 해요.
어느 때는 이제 그만 살았으면 하는 사위스러운 마음마저 들어요. 내 몸에 링거를 꽂아놓고 나를 보호한다지만 다 부질없는 일일 뿐입니다. 매연 속에서 마치 서초동 네거리 교통순경처럼 그렇게 서 있어야만 하니,,.
내 모습은 푸른 기를 잃어버렸어요. 매연에 찌들어 검푸른 색으로 변해버렸지요. 폭우가 쏟아질 때면 내 몸에 앉은 때를 벗겨내고 싶어 안간힘을 써보지만 너무 찌들고 배어서 씻겨 지지 않는군요.
내가 뽐내며 살던 그 옛날 꽃동네 사람들은 순하고 어질었지요. 여름이면 내 그늘밑에 돗자리를 펴고 앚아 덕담을 나누고, 매미며 여치가 뽑아대는 시원한 곡조에 맞춰 흥을 내던 한량들. 그때 그 시절 평화는 다 어디로 갔을꼬.
나는 나날이 쇠잔해 가는데 어쩔 수 없이 이대로 이곳에 있어야하는 게 서글픕니다. 이제 점점 흉측하게 변해 갈 내 모습이 보이는 듯해요. 그래서 안타깝고 괴롭답니다. 이따금 내 모습을 사진에 담는 젊은이들이 왔다 가면 좋은 일이 있을까 기다려집니다. 내 사진을 어디엔가 실어 나를 살려주려는 사람들이 있을까 해서지요.
지난봄에는 사람들이 오래만에 샤워를 시켜준다고 법석을 떨었지요. 겨우내 쌓였던 자동차 매연과 최근 찾아 온 황사 때까지 말끔히 닦아준다고요. 영양제 주사도 놓아주었지만 내 몸에 문신처럼 새겨진 상처는 씻어지지 않았답니다.
노구라서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모르겠지만, 남은 시간만이라도 내가 살고 싶은 곳에 가서 살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랜 세월을 살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으나 고고하고 품위 있는 모습으로 남고 싶습니다. 매연에 찌든 늙은 나무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는 것은 정말 슬프거든요.
보호수로 명명되기보다는 잡목이어도 청청한 산속에 서 있고 싶어요. 아무도 돌보지 않아도, 사람들이 함부로 등을 들이대고 부딪고 괴롭혀도 그런 곳에 가 있고 싶어요. 가을, 오색단풍이 든 나무들 사이에 서서 홀로 푸름을 자랑하며 새들과 노닐고 자부심을 느끼는 나무가 되고 싶어요. 내가 서 있는 지금 이곳은 지옥의 길목입니다.
슬퍼하는 내 마음속 말을 제발 흘려듣지 말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