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를 들고 뛴 아빠
둘째가 7년만에 일시 귀국하여 호암 아트 홀에서 독주회를 하는 날이다. 연주 30분 전에 드레스를 입다가 지퍼가 망가졌다.
큰애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내게로 달려왔다. 손님들이 계속 입장해 자리를 뜰 수가 없으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그때 손에 드레스를 든 남편이 바람을 일으키듯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었다.
"엄마, 어떡하죠? 아빠가 지퍼를 새로 달아 온다고 세탁소엘 가셨어요."세탁소라니, 이 동네에 세탁소가 어디 있다구. 나는 피가 바싹바싹 말라붙는 것만 같았다. 계속 들어오는 손님들을 태연하게 맞으면서도 내 눈길은 밖을 향하고 있다.
"아빠가 오세요."
큰애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니 드레스를 들고 무대 뒤로 뛰어들어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보인다. 저런 초인적인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시계를 보니 연주 5분 전이다.
현기증이 이는 것을 참으며 손님들을 반긴다. 이미 연주는 시작되었지만 나는 늦게 도착하는 손님들 때문에 입장을 할 수가 없어 로비에 있는 모니터로 다가갔다.
화면에 보이는 승연의 연주는 가히 감동적이다. 그 말썽많은 드레스를 딸에게 입혀 놓은 부성애(?)가 조화를 이루어 음악을 더욱 빛나게 하는 것 같다. 조금 전 30분 동안의 일들이 마치 악몽처럼 여겨진다. 남편의 얼굴은 그때까지도 핏기가 가신 백지장 같았다.
모차르트 곡이 끝나자 관중들이 환호를 한다. 맑은 터치와 아름다운 음률이 아래위층에 꽉 메운 관객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가느다란 지퍼가 없어서 점퍼에 다는 굵은 것을 달았는데, 승연이 등이 긁히지는 않겠지?내 귀에다가 작은 소리로 말하는 남편의 입에서는 아직도 단내가 난다.
"서소문 거리를 달리면서 세탁소가 어디 있느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나는 그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의 손은 아직도 땀으로 촉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