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뿌리 찾아준 정신적 지주" 열사 위한 일본어책 내고파
[CBS사회부 조은정 기자] 유관순 열사의 열혈팬을 자청하며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잊혀져가는 열사들의 삶과 정신을 기리는 일본인 주부들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인생의 뿌리 찾아준 정신적 지주"
일본인 나이토 지혜(48) 씨의 노래 18번은 다름 아닌 '유관순 노래'다. 평범한 주부지만 유관순의 열혈 팬인 지혜 씨는 지난 90년 결혼해 한국 땅을 밟기 전까지는 유관순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17년 전 유관순 열사의 고향인 충남 천안시로 이사 오게 되면서 집 근처에 있는 유관순 열사의 생가를 방문했고 차츰 짧지만 강렬했던 열사의 삶을 알게 됐다.
무엇보다 사회에 무관심했기에 ‘애국심’이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낯설었다는 지혜 씨는 유관순 열사를 통해 "나와 가족만을 생각했던 이기주의에서 한발 물러서 주변과 사회를 돌아보게 됐다"고 말한다.
결정적으로 지혜 씨의 마음을 울린 것은 그 유명한 ‘기저귀 일화’ 이다.
유관순 열사가 서대문 형무소에서 투옥 중일 때 감옥에 함께 있던 산모를 위해서 젖은 기저귀를 허리춤에 감아 체온으로 말려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혜 씨는 모성애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지혜 씨는 “내 자식 뿐 아니라 남의 자식을 사랑하고, 후손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진정한 모성애라고 생각한다”면서 “유관순 열사는 다문화 가정을 꾸리면서 살아가는 나 같은 일본인 주부들에게 인생의 뿌리를 찾게 해준 정신적인 지주”라고 말했다.
◈일본어 엉터리 팜플랫에 항의
지혜 씨가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 같은 훌륭한 업적들이 일본인들에게 홍보되지 못하는 현실이다. 번역일을 하고 있는 지혜 씨는 몇 해 전 유관순 기념관이 문을 열었을 때 엉터리로 된 일본어 팜플랫을 보고 기가 막혀 단체에 항의하기도 했다.
“내가 받은 감동이 엉터리 번역 때문에 일본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 속상하다”는 지혜 씨는 “유관순 열사를 소개하는 일본어 책을 쓰고 싶다”라고 말했다.
지혜 씨는 올해도 일본인 주부들과 함께 3.1절에 천안 병천 시에 있는 유관순 생가를 방문하고 넋을 기릴 예정이다.
◈"국적 상관없이 본받아야…과거 조상들 행적 반성"
니시무라 노리꼬(46) 씨는 93년 남편을 따라서 한국에 들어온 뒤 처음 맞은 3.1절을 잊지 못한다.
혹시나 사람들이 일본인인 나에게 화를 내지 않을까 싶어 3.1절이나 광복절이 되면 무서워서 밖으로 나기지도 못했다는 노리꼬 씨.
하지만 이제는 이 날들이 자신에게도 뜻 깊은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특히 노리꼬 씨는 “유관순 열사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진정한 애국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고 한다. “일본에서 '애국'이 우익의 전유물인 것 같아 거부감이 있었는데 이념을 벗어난 진정한 애국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됐다”는 것이다
“한일 관계에 상관없이 그 자체만으로 봐도 대의를 위해 희생했던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노리꼬 씨는 “과거에 조상들이 했던 일에 대해서 반성을 하는 마음도 생겼다”고 말했다.
이제는 유관순 열사 전문가가된 노리꼬 씨는 유관순을 한국의 잔다르크라고 비유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잔다르크는 전쟁을 위해 싸웠지만, 유관순은 평화를 위해 싸웠잖아요.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은 정말 배워야 할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유관순 팬이라 자처하는 노리꼬 씨는 많은 3.1절에 예를 갖춰 태극기를 다는 것은 물론, 일본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도 유관순 열사의 일화를 소개하기 바쁘다.
어느 한국인 못지 않게 유관순의 삶에 대해서 깊숙이 알고 있는 일본인 주부 노리꼬 씨에게 이제 3.1절은 화를 입을까 두려운 날이 아니라, 평화의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뜻 깊은 날이 됐다.
이들 일본인 주부들의 유별난 유관순 사랑은 정작 한국인에게서도 서서히 잊쳐지고 있는 열사들의 삶과 정신을 다시 한번 돌이키게 하고 있다.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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