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샘

겨울을 기다리는 남자

concert1940 2009. 11. 30. 22:03

앞산에 울긋불긋 단풍이 한창이다. 이제 곧 고운 옷을 벗어버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아는 듯 이글거리는 화염을 토해내고 있다. 끝 가을의 미련을 가득 품어 안은 나무들은 마지막을 처연하게 버텨내는 모습이다.

 

 아버지 방문을 열었다. 티비 위에는 여전히 투박한 밍크모자가 놓여있다. “아버지 모자 치우지 그러세요.”  “왜 그냥 둬 금방 겨울이 될 텐데,,.”

나와 아버지의 이 대화는 수십 일이 되도록 그치지 않는다. 늦여름부터 꺼내 올려놓은 모자는 겨울을 기다려 얹혀있는데, 나는 그 모자를 치우고 싶어 안달을 하는 중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끈기는 말릴 수가 없다.

 

 오래 전 남편이 러시아를 다녀오면서 장인에게 선물한 밍크모자는 90년대 초에는 희귀한 물건이었다. 여인들의 것이 아닌 남성의 모자는 구경거리가 되는 물건이었다. 아버지는 선물을 받아 든 순간 그동안 쓰고 다니시던 수달피 모자를 내리고 밍크모자의 애호가가 되셨다.

 

 가을의 끝이 꼬리를 감추면 아버지 머리위에는 밍크모자가 올라가 있다. 모자를 쓸 만한 날씨도 아닌데 머리가 시리다고 하신다. 초겨울이라지만 바람이 그리 차지도 않고 적당한 기후인데도 아버지는 매일 모자를 쓰고 공원으로 출타하신다. 외출에서 돌아오신 후는 밍크모자가 티비 위에 반듯하게 얹혀있다. 어린아이와 같은 발상에 식구들은 웃어넘기지만 아버지는 매우 진지하신 듯하다.

 

 모자를 선물 받으신 아버지는 사위 자랑이 가슴에 넘치도록 하나 가득했다. 공원 어르신들과 대화도 거의 밍크모자뿐이었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배어도 모자를 벗지 않으신다. 집에 돌아오셔서는 모자에 정성스레 빗질을 하시며 소중하게 다루신다.

 

 아버지에게 나는 단 하나 핏줄이다. 당신의 가슴 깊은 곳에 딸을 담아놓고 사신다. 그런 아버지의 가슴을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체하는 내 양심은 온기가 가신지 오래다. 오래오래 모실 생각으로 아버지께 대면대면 굴며 내 스스로를 단련한다. 나이가 드신 분들은 거의 어린아이처럼 변하기 때문에 공경만이 효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내 아이들과 별다르지 않게 평범하게 대하며 지나친 관심에서 자유 하였고 홀로서시도록 독려해 드린다. 그런 때면 나는 아버지 눈을 바로 보지 못한다.

 

“오늘 아침 춥지?” 방문을 열고 나오시며 날씨부터 물으시는 아버지, 추워졌기를 기다리는 그분 앞에 춥지 않다고 대답을 망설이며 콧날이 시큰해진다. 마치 설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꼬까옷을 꺼냈다 넣었다 하며 날들을 세어보던 내 모습처럼 아버지는 가을이 채 기울기도 전부터 겨울을 기다리셨다. 아버지의 겨울은 결코 춥거나 쓸쓸하지 않았다.  겨울은 그분의 가슴에 기쁨이 가득 고여 설레는 계절이었다.

 

 이제 아버지가 아끼며 소중하게 여기시던 밍크모자가 주인을 잃고 장 속에 놓여있다. 가뜩이나 두상이 크신 아버지가 귀마개까지 달린 두툼한 밍크 모자를 쓰시고 빠른 발걸음으로 차에 올라타시는 모습이 생생하다. 27년간을 함께 지내오시는 동안 내게 어떤 폐라도 끼치지 않으시려는 아버지의 깔끔한 성격이 때로는 거역 스럽고 짜증스럽기도 했으나 차츰 너무나 감사하고 그런 아버지의 참마음을 알아드리지 못한 게 얼마나 후회가 되는지, 모자를 어루만지며 가만히 아버지를 불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