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다 사이 내가 있다” 제주 올레길 |
![]() 쉬멍쉬멍 가당보믄 그리운 님 보아지카 제주 토박이말은 바다와 닮았다. 유성음 ㄴ ㄹ ㅁ ㅇ이 많다. 이들이 단모음 ㅗ ㅏ ㅓ ㅜ ㅡ ㅣ와 어우러지면 금세 파도소리가 들린다. 어멍(어머니), 아방(아버지), 할망(할머니), 하르방(할아버지), 아주망(아주머니), 홀어멍(홀어머니), 니영나영(너하고 나하고), 놀멍(놀다가), 쉬멍(쉬다가), 걸으멍(걷다가)…. - [화보] 아름다운 그 길, 제주 ‘올레길’ 가기 - [화보] 프랑스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맛’으로 만끽하다 - [화보] 빈탄섬서 즐기는 ‘나이트 라이프’ 화보 감상
바닷물이 넘실넘실, 어깨춤이 슬쩍슬쩍 들썩인다. 하지만 그 폭은 ‘울렁울렁 울렁대는’ 울릉도보다 크지 않다. 그렇다고 ‘얄리 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의 들썩임보다 작은 것은 아니다. 굴 따러 간 엄마 대신, 스르르 아기를 잠재운 바다가락과 같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노젓는 소리나 “또르르 촐랑∼ 촐랑…” 부슬비 오는 봄밤의 초가집 낙숫물 리듬이라고나 할까. 아무리 각지거나 날선 것도 제주에 오면 둥글어진다. 울퉁불퉁 바위도 ‘엉’이 되고 삐죽한 나무도 ‘낭’이 된다. 가시나무는 ‘가시낭’이고, 팽나무는 ‘폭낭’이다. 깎아지른 절벽도 그저 ‘기정’일 뿐이다. 한여름 이글이글 불타는 땡볕은 ‘와랑와랑한 햇살’로 변한다. 산더미 같은 파도는 한풀 죽어‘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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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뭍에서 부드러운 말도 예외가 없다. 제주에 오면 한번 더 곰삭는다. 홍어처럼 시큼하게 발효한다. 말만 들어도 콧속이 큼큼한 ‘고소하게’는 한층 더 섹시한 ‘코시롱하게’로 휘발한다. 오죽하면 육지 칠순노인들도 부드럽게 소리내는 ‘반딧불이’조차, ‘불란디야’라고 속삭일까. 서귀포 팔순 할망들이 입을 오물이며 (반딧불이 가지고 함부로 장난하다간) 불란디야!! 웅얼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ㅋㅋㅋ …. 슬며시 소 웃음이 나온다. 푹 삭힌 제주자리젓이 따로 없다. 실핏줄 같은 동네 고샅길 이어 139km ‘올레’는 제주 토박이말로 ‘집 마당에서 마을길로 들고나는 어귀길’을 뜻한다. 한마디로 동네 고샅길 같은 것이다. ‘제주 올레길’은 그런 길을 죽 이은 실핏줄이다. 한때 시사저널 편집국장이었던 서명숙(51·사단법인 제주올레이사장) 씨가 지난해 고향 제주에 처음으로 길을 잇기 시작했다.
![]() 17일 현재 9코스까지 139.11km의 올레길이 생겼다. 한라산 남쪽 서귀포를 중심으로 좌우해안을 따라 펼쳐진다. 이는 크게 서귀포 해안길(2∼6, 8코스 84.91km)과 성산일출봉 부근의 오름길(1,7,9코스 54.2km)로 나뉜다. 오름은 ‘새끼화산’을 말한다. 제주엔 달 항아리 같은 오름이 여기저기 360여 개나 누워있다. 가운데 큰 쌀 항아리(한라산) 하나에, 빙 둘러 고만고만한 고추장 독, 간장 독, 씨앗 독들이 올망졸망 장독대를 이루고 있다. 서귀포 해안길은 바당(바다)올레, 마을올레, 하늘올레다. 바다는 검은색 감도는 짙푸름→청자 하늘색 푸름→새싹 연초록 푸름으로 켜켜이 너울댄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선은 아슴아슴하다. 그 사이에 아지랑이가 눈가 잔주름처럼 꼬물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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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몸의 감각이 슬며시 열린다. 먹통이 됐던 귀와 코가 슬슬 벌름거린다. 짭조름한 바다냄새가 나고 파도소리, 새소리, 바람소리가 들린다. 문득 바닷물에 발을 담근다. 잔 너울이 밀려와 종아리를 간질인다. 갯바위에선 낚시꾼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성산포 부근의 오름길은 들꽃 세상이다. 1코스 출발점인 시흥초등학교 길부터 파란 달개비 꽃(닮의장풀), 붉은 여뀌 꽃이 우우우 피었다. 서울에선 이미 보기 힘든 한여름 들꽃 엉겅퀴와 달맞이꽃이 보란듯이 웃고 있다. 말미오름 잔등 위엔 노란 괭이밥 꽃에 벌들이 잉잉거리며 달라붙는다. 얼른 잎을 따다 한입 넣는다. 어릴 적 새콤한 맛이 아련히 되살아난다.
쇠뜨기 바랭이 쇠비름 개망초 질경이 명아주가 한데 버무려져 진한 생풀 냄새를 풀풀 풍긴다. 쇠똥 말똥냄새가 구수하다. 연보라 쑥부쟁이 꽃이 수줍게 하늘댄다. 그런데 왜 하얀 구절초는 잘 눈에 띄지 않을까. 노란 방가지똥 꽃이 언뜻언뜻 보이고, 연노랑 왕고들빼기 꽃은 이미 시들어 검은 씨앗을 맺었다. 붉은 꿀풀 꽃엔 노란 나비가 세상모르고 코를 박고 있다. 은빛억새가 어른거려 눈이 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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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미오름은 목장문 열고 들어가 언덕길 따라 오른다. 봉우리(해발 145.9m)는 암말엉덩이 꽁지부분. 저 멀리 성산포 앞바다가 파노라마처럼 울렁인다. 온갖 푸른 물감이 한꺼번에 풀어져 정신이 아득하다. 논밭을 둘러싼 검은색 돌담과 그 사이에 자라고 있는 초록 곡식들. 검푸른 솔밭과 그 너머 빙그레 솟아오른 천연원형경기장 일출봉. 문득 조랑말들이 물끄러미 바다를 본다. 나도 하릴없이 저 먼 바다를 본다. 하늘과 바다 사이에 내가 있다. “히히힝∼” 풀 뜯는 조랑말들이 있다.
중산간에 있는 김영갑갤러리 ‘두모악’
9코스는 중산간 올레길이다. 제주해안과 한라산 고산지대 사이에 숨어있다. 마을과 숲 그리고 밭둑길을 지난다. 우영팟(텃밭)의 파릇파릇 마농(마늘)이 이채롭다. 22km(5∼6시간)로 9개 올레길 중 가장 먼 거리이기도 하다. 물통처럼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통오름, 말굽모양의 독자봉을 지난다. 길이 8km, 너비 8만 평의 표선백사장도 만날 수 있다. 썰물 때는 원형백사장, 밀물 땐 커다란 호수로 변한다.
![]() 김영갑(1957∼2005) 씨는 제주의 넋, 바람을 찍었다. 그는 태풍이 밀려오면 미친듯이 바람을 맞으러 나갔다. 깔깔거리는 바람, 흐느끼는 바람, 미친 듯이 화를 내는 바람…. 정신없이 찍어댔다. 산발머리의 억새밭, 흰 거품을 뿜어내며 씩씩거리는 파도, 참새처럼 재잘거리는 들꽃….
![]() 올해 5월 열리기 시작한 지리산 둘레길 1, 2구간 21km(전북 남원 산내면 매동마을∼경남 함양 휴천면 세동마을)는 아버지와 아들이 걷는 길이다. 때론 낮은 곳(구례 토지 50m), 때론 산꼭대기(하동 악양 형제봉 1100m)를 오르내리며 마음을 튼다. 그 길은 친구들끼리, 혹은 대학 동아리 회원들끼리 걷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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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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