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사다리 - 김우종
꿈을 먹고 사는 것은 어린 소녀들이나 소년들만은 아니다. 꿈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 아니 인류의 역사 자체가 하나의 꿈의 역사다. 그 꿈을 부단히 추구하여 마지 않는 곳에 인생의 고달픔이 있고 비극이 일어나지만 거기 또 인생의 긍지가 있다.
꿈이란 말은 이상(理想)이란 말로 바꾸어도 좋을 것이다. 이상은 현실의 반대다. 현실이 아닌 저 높은 곳에 두고 바라보며 동경하고, 또 그곳에 이르러 발버둥치는 대상, 그것이 곧 이상이다. 어린 시절에 우리는 흔히 저 밤하늘의 별을 따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 본다. 커다란 달이 지붕 위에 걸렸을 때에는 달도 따보고 싶어진다.
애들아 오너라/달 따러 가자
장대들고 망대 메고/뒷동산으로
뒷동산 올라가/무등을 타고
장대로 달을 따서/망태에 담자
저 건너 순이네/불을 못 켜서
밤이면 바느질도/못한다더라
얘들아 올라 와/달을 따다가
순이 엄마 방에다가/달아드리자
그러나 장대를 들고 뒷동산에 올라가서 별이나 달을 따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달은 항상 저 먼 곳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소년들의 동심(童心) 속엔 현실과 이상의 거리가 새겨진다. 별나라 달나라는 멀고 먼 하늘의 저 아득한 곳, 그래서 자기 엄마가 죽으면 저 먼 별나라 달나라에 가 있으리라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무리 먼 곳에 있다 한들 인간이 그것을 한 번인들 깨끗이 단념해 버린 일이 있을까? 장대를 들고 뒷동산에 올라간들 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인간이지만, 그러나 그들의 욕망은 완전히 단념으로 끝나 버린 일이 없다.
뒷동산에 올라가서 장대만 들고서는 안 되리라 생각했다면 하나하나 탑을 쌓아 올려가면서라도 올라가 보려고 한 것이 인류의 역사가 아니었던가! 저 바벨탑을 보자, 미완으로 끝나 버린 저 광막한 사막 위의 <바벨 탑>을, 그것은 웃을 일이 아니었다. 말닥 성전(聖殿)의 황홀한 위엄, 바벨론 문명의 그 높다란 탑은 과연 무엇을 의미했던 것일까?
저 하늘의 별을 따려 한 자들이 이 무모한 공사(工事)를 시작했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탑을 쌓으면서 서로 싸우다가, 그로 말미암아 공사는 실패로 돌아가고 그들은 서로 멸망에 버렸다고 한다. 어리석은 인간들이 서로 종족(種族)간에 질투하며 싸우면서도 하늘나라에까지 올라가 보려다가 스스로 멸망에 버린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의 머나먼 거리라는 것이, 다시 말해서 신과 인간과의 건널 수 없는 아득한 거리라는 것이 여기 표현되어 있는 셈이겠다. 그러나 이렇게 싸우면서도 그들의 후손이 다시 탑을 쌓기 시작한 것을 어찌하랴!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미국과 소련, 그리고 또 많은 민족들은 서로 싸우면서도 지금까지 끊임없이 탑을 쌓아오지 않았는가?
소련이 맨 먼저 달에다 그들의 쇳조각을 꽂았고, 미국이 맨 먼저 인간의 발을 그곳에 내려놓고 그곳의 물건을 이곳으로 가져왔다는 얘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참으로 우리 인류는 얼마나 고달프게 저 먼 하늘, 아득한 이상을 현실에다 끌어오려는 안타까운 발돋움을 해온 것이랴! 여기에 우리 인류의 고달픔이 있고 비극이 있지만, 또 그처럼 <무너진 바벨 탑>을 단념하지 않고 다시 쌓아올려 온 데에 인류의 영광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런데 이상을 향한 이같은 발돋움이란 하나 하나의 계단, 하나 하나의 사다리를 밟아나가는 과정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전 인류의 경우이건 어느 하찮은 개인의 경우이건, 그들에게 꿈이 있고 이상이 있는 이상 그들은 사다리를 밟고 나간다.
어느 날 나는 어떤 문학상을 하나 받았다. 다음날 강의실에 들어갔을 때 학생들로부터 축하의 박수를 받은 일이 있었다. 고맙기도 하려니와 나로서는 부끄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해 주었다.
“지난번 수상식장에서도 여러분들이 고맙게 꽃을 달아 주었지만 나는 부끄럽기만 합니다. 나이를 먹었대서가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들 앞에서 영광의 박수를 받고 꽃을 받을 만큼 훌륭한 인물이 못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나보다 훨씬 젊고, 감수성이 빠르고, 판단력이 예민하고 또 정의감이 강합니다. 나는 여러분들보다 더 많이 살아왔고 더 많이 전공 분야에서 공부를 해 왔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내게 오는 것은, 내 나이를 보기 위해서 오는 것은 물론 아니려니와 지식을 얻기 위해서 오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내게서 지식을 얻어간다는 것은, 여러분들이 원하는 목적의 적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내게 원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성(知性)이며 양심이며 그 인격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에 있어서 나는 젊은 여러분들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다는 나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단 한 가지 내가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이 인생의 사다리입니다.
여러분들은 젊기 때문에 나보다 더 많은 꿈을, 이상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꼭 가져야만 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은 아직 혼자서 그 높은 데까지 기어오르기는 벅찰 것입니다. 오르다가 피곤할 때, 혼자서 그 이상 더 올라가기 어려울 때 나를 부르기 바랍니다. 약한 힘이나마 가까운 데 오를 때는 사다리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더 많이 살아왔기 때문에, 그리고 더 험한 고개를 올라 와 있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오르는 길에
사다리가 될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밟고 올라오거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고 그 다음의
오름길을 찾으시오. 거기서 또 하나의 사다리를 발견하고, 그리고 또 오르시오, 그리고 훗날 여러분들의 후배가 생기거든 여러분들 역시 그들에게 조그만 사다리가 되어 주십시오.
인생은 <바벨 탑>의 공사입니다. 단 바빌론의 사막에서처럼 서로 싸우는 <바벨 탑> 공사가 아니라 서로 돕고 서로 즐겨 사다리가 되는 <바벨 탑>공사 말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들에게 무슨 손실이 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나는 지금까지 숱한 사다리를 밟고 올라왔습니다. 옛날에 나를 가르쳐 준 모든 스승들, 시골 초가집 학원의 선생님부터 대학을 나올 때까지의 모든 스승은 내 인생에 있어서 사다리가 되어 온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니죠. 나의 부모도 그렇고, 내가 읽는 책의 저자들도 그렇고, 또 가까운 친구들도 그렇고, 그들은 모두 나의 사다리가 되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남의 사다리를 밟고 올라오는 대신, 또 모두 남을 위한 사다리가 되어야겠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나의 힘이 필요하다면 나를 찾으십시오. 그리고 나를 밟고 더 높은 이상을 향해 올라가십시오. 결국 제자가 스승보다 높이 오르지 않으면 어찌 이 세상에 문명의 발전이 있고 장래에 대한 우리 모두의 영광이 있겠습니까?“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그리고 역시 부끄럽기도 했다. 나의 이 나약한 체구를 너도 나도 밟고 올라서려 한다면 나는 대번에 찌부러지고 말지도 모를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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