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방울이 떠나다
둘째가 기어이 독일로 떠났다. 크리스마스라도 함께 지내고 가면 좋으련만 비행기 티켓이 여의치 않다. 똑똑이 둘째는 혈혈단신 낯선 타국으로 떠나갔다.
"승연아, 파리 공항에 내리면 나가는 곳이 여러 곳이니 루프탄자 에어 라인을 먼저 찾아서 알아놓고 쉬거라." 배낭을 짊어지고 겁도 없이 들어가려는 아이에게 나는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았다.
"응, 알았어요. 네 시간 쉬었다 가니까, 내가 알아서 찾을게요." 똑똑하다. 누구보다 자기 일을 알아서 하는 아이이긴 해도 어미 마음은 그게 아닌 것을. 영어로 말해도 되려나, 잘 안 통하면 어쩔까. 공연히 내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렸을 때 통통하고 동그래서 돼지방울이라고 별명을 불렀던 아이가 방울처럼 통통 튀면서 혼자 떠났다.
공항에서 돌아오는 길이 이토록 허전할까. 남편도 동생들도 다들 말이 없다.
"우리 만두 잘하는 집에 가자."
별안간 차를 돌리라며 남편이 서두른다. 우리는 김포에 있는 유명한 만두 집에서 포식을 하면서도 목이 메었다.
밤새도록 잠을 설치다가 겨우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다. 남편이 출근한 뒤에 나는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질 않는다. 독일에 도착해서 교수님을 만났다면 연락이 올 때가 거의 되어가는데, 나는 전화기 앞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때르릉"
이때만큼 이 소리가 반가울 수가 있겠는가.
"엄마야? 나 승연이, 교수님댁에 왔어요. 엄마 걱정 많이 했지?"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꼬맹이를 혼자 머나먼 곳으로 등 떼밀어 보내놓고 십년은 감수한 것 같다. 눈물이 한없이 나왔다. 기쁨이 넘치면 눈물이 나오는 것일까. 순간 왜 이렇게 꼭 보내야 했을까하는 의문이 생겼다. 열여덟 살짜리를! 나는 매정한 어미야.
*돼지방울 /둘째 승연의 애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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