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샘

나무 닭 / 이정림

concert1940 2010. 6. 19. 09:01

 덤덤하다는 것은 뜨겁지 않다는 뜻이다. 그 덤덤하다는 것을 좋게 말하면 감정의 절제를 잘한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감정에 둔하니 매력이 없다는 뜻이 된다.

 나는 그 두 가지 성향을 다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도 반갑다고 얼싸안지 않는다. 친구들도 그런 나를 닮아 가는지, 이제는 두 팔 벌려 다가오는 사람이 없다. 몇 십 년 만에 외국에서 온 친구도 어제 본 듯 덤덤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아간다. 그렇게 멋없이 만나고 헤어지면서도 우리는 늘 가까이 있는 것처럼 생각이 되는 게 이상할 정도이다.

 내가 덤덤해서 그런지 화끈한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화끈하게 다가오는 사람은 경계부터 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제풀에 뜨거웠다가 제풀에 식어 떠나 버리는 예를 너무도 많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이런 내가 새해라 하여 무슨 계획을 특별히 세우겠는가. 바라는 게 있다면 더욱 덤덤해지는 것뿐이리라. 듣기 좋은 말에 만족하고,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일이 잘 안 되었다고 좌절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더욱 덤덤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장자 달생 편에는 '목계(木鷄)'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왕이 투계를 좋아하여 기성자란 사람에게 싸움닭을 구해 최고의 투계로 만들어 주기를 부탁했다. 열흘 후에 찾아가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아직 멀었다고 했다. 닭이 강하기는 하나 교만하여 제가 최고인 줄 안다는 것이다.

 다시 열흘 후에 찾아갔더니 이번에도 아직 멀었다고 했다. 교만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의 소리와 그림자에 너무 쉽게 반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 열흘 후에 찾아갔더니, 조급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을 노려보는 눈초리가 너무 공격적이어서, 그 눈초리를 버려야 한다고 했다.

 다시 열흘 후에 찾아갔더니 기성자는 드디어 이렇게 말했다.

"이제 되었습니다. 이 닭은 나무 닭처럼 상대방이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덤벼들어도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상대가 아무리 거칠게 공격 자세를 취해도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공격하던 닭들은 제풀에 지쳐 슬그머니 물러갈 수밖에 없지요. 이것이 최고의 싸움 기술입니다. 이 닭은 이제 싸움을 하지 않고도 상대를 제압하는 경지에 이른 것입니다.”

 새해의 다짐이 아니더라도, 내가 염두에 두어야 하는 덕목은 바로 이'목계지덕'인 것이다.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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