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1

사진 한 장---등단작품/김옥진(안나 엄마)

concert1940 2005. 5. 17. 19:13
명함판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찍기 전부터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얼굴만 찍는 것이라 유독 다른 날보다 머리며 화장에 공을 들였다. 조금이나마 젊고 예쁘게 보이려고 애쓰는 내 자신이 좀 안쓰러웠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매년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졸업 앨범용 사진을 찍어주는데 언젠가부터 사진 찍기가 싫어졌다. 한 해 한 해 달라지는 내 모습이 확연해 보였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친척들이 나를 보면 한결같이 “엄마는 안닮았구나! ” 하셨다. 매 번 그 말을 들을 때면 ‘그렇구나 나는 엄마완 다르게 생겼구나’ 라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대학을 들어가면서부터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어머니를 닮지 않은 얼굴 부분, 그곳이 내 얼굴의 약점이 되어 남에게 드러내기 싫어 화장품을 사기 시작했다. 우선 머리숱이 적어, 파마를 했고, 엷고 퍼진 눈썹을 가리기 위해 먼저 눈썹연필을 골랐다. 그 다음은 쌍꺼풀이 없는 것, 그러나 이 부분만은 개의치 않았다. 친구들이 선하게 생겼다느니 사슴 눈을 닮았다느니 하는 말을 해 주어 정말 그런 줄 알고 잊고 지냈으므로. 그러나 입은 가만히 보면 약간 비뚤어져 있다. 그래서 지금도 사진을 찍을 때마다 유독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다. 맏이인 나는 어머니를 힘들게 하면서 세상 밖으로 나왔던 모양이다. 의료진이나 시설이 지금에 비할 바가 아니었던 시절, 그나마 용한 의사를 만나 기계의 힘을 빌려 세상 밖으로 나온 나는 얼굴에서 특히 입부분만 일그러져 있었다고 한다. 머리를 다치지 않은 것이 천운이었을 만큼 난산이었다 하는데, 후유증으로 어머니는 여러 달 자리보존을 해야 했고, 아버지는 또 여자 아이가 얼굴이 미우면 어찌하나 밤마다 내 입가를 주물러 주셨다니, 두 분의 정성이 아니었으면 오늘 내 모습이 어찌 되었을까, 상상하기조차 싫다. 얼마 전에 친정 동생들과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원래 계획은 어머니를 모시고 형제들이 다 함께하기로 한 여행이었다. 최근에 무척 외로워하시는 어머니를 위로해 드리고 막내 동생이 겪은 가정적인 아픔도 아물어 가는 듯하여 기분 전환을 해주고 싶었다. 7남매 중 둘은 외국에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나머지 형제는 한 서울 안에 살면서도 함께 모여 여행하기가 왜 그리 힘들었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하니 원인은 거의 나에게 있었다. 직업이 있다는 핑계로 일정을 마음대로 바꾸었던 독선이 어머니와 동생들의 마음을 편치 않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제 기력이 예전 같지 않으시다. 평생을 종가집의 맏며느리로 아버지의 내조자로 희생을 감수하신 분이시다. 아버지를 저 세상으로 보내시고 10여년 넘게 혼자 계시는 동안에도 자식들에게 의존하지 않으시는 듯 당당하셔서 안심을 했다. 그런데 예전엔 어디든 따라 나섰던 어머니었건만 이번 여행길에는 자식들에게 짐이 된다고 극구 동행하길 마다하셨기에 마음 한구석은 어두웠다. 그 동안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외로움을 내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안심시켜 왔다는 사실에 새삼 가슴이 아팠다. 오늘 1교시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지난 번에 찍었던 사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놀라웠다. 사진 속 내 모습이 어머니를 너무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껏 어머니완 사뭇 다르게 생겼다고 여겨온 내 선입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어머니의 예전 중년 모습을 대하는 있는 듯 했으니. 얼마 전 여행을 갔을 때 휴게소에서 나오는 나를 보고 막내 동생이 “어쩜 큰언니가 엄마와 그렇게 똑같아.?” 했을 때는 그저 무심히 지나쳤었다. 그런데 오늘 이 사진을 대하고 보니 그 말이 실감이 가면서도 마음 한편이 무겁다. 어머니처럼 어려움을 참고 견디면서도 당당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아직 나는 어머니의 삶을 흉내 낼 수조차 없다. 언젠가 어머니는 나에게 “네가 이제는 내 대신이다,” 라고 하시며 기대시는 것 같았는데 지금껏 어머니께 힘이 되어 드리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조그만 사진 한 장이 내 마음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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