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에디터 · 최승영 ㅣ 사진 · 리조트 라이프 ㅣ 취재 협조·리조트 라이프(02-771-1133, www.resortlife.co.kr), 오리엔트 타이 항공(02-757-6399, www.orient-thai.net) ![]() 한여름 습기 없는 뜨거운 바람을 타고 코끝을 스치는 그 향기가 문득 조병화 선생의 라벤더 시를 읊조리게 만들었다. 라벤더 로션을 손바닥에 덜어 살갗에 비벼댈 때 느꼈던 인조 향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황홀하다 못해 아지랑이 같은 현기증이 마음을 뒤흔들어놓는다. 눈앞에 가릴 데 없이 펼쳐진 산등성이를 남보랏빛으로 뒤덮은 라벤더 물결을 만나자, 전국이 고작 하루 거리인 나라에 수십 년을 살고 있으면서도 봉평 메밀꽃 필 시기를 맞추지 못해 사진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나에게 남프랑스 시골의 라벤더 꽃구경은 행운처럼 여겨졌다. 생명 주기가 명확한 것이 자연의 법칙이라서 세상 어디에도 번식을 위해 일 년 내내 개화하는 꽃은 없을 것이다. 그렇 기에 사계절 중 아주 잠시잠깐인 꽃철을 맞춰 여행한다는 것은 유명 축제나 전시회 참관과는 또 다른 차원의 열정이 필요하다. 광활한 산비탈에서 햇볕 샤워를 즐기는 라벤더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꽃송이가 튼실하고 빛깔이 화려해서 테이블 위에 둘 때 근사해 보이는 종류는 아니다. 양 볼에 주근깨 가득한 처녀처럼 소박하고, 기다란 가지 끝에 줄줄이 붙은 낱알 꽃송이가 무리 지어 있을 때 비로소 아름다움을 발한다. 이런 군중의 힘을 발휘하는 라벤더가 여행객에겐 소녀 적 꿈을 불러일으키는 관상의 대상이지만, 프로방스 농부들에게는 생업의 중요한 수단이라고 한다. 1800년대, 프로방스 고산지대에서 야생하던 라벤더는 사람들에게 블루 골드blue gold로 불렸다. 당시 향수 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아로마 식물의 수요가 급증하였고, 이를 계기로 양치기와 농부들이 부업으로 삼던 야생 라벤더 채집은 본업이 되어 재배를 시작한 것이다. 위도 40~45도에서 잘 자라는 라벤더는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가 천혜의 자생지인데 요즘은 재배지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어, 이 신비한 서양 꽃을 동양에서 구경하고 싶다면 7~8월에 일본 홋카이도 후라노 지역을 방문하면 된다. 연보랏빛을 그냥 라벤더색이라 부를 만큼 라벤더의 꽃색은 연보라가 대표적이다. 간혹 흰색이나 분홍색도 있으나 그건 라벤더 세계에서 정통이 아닌 비주류에 속한다. 윙윙거리는 벌들을 따라 라벤더 꽃밭 사이를 한나절 구경 다니다가 허기를 느꼈다. 프랑스 관광성에서 자신 있게 추천한 레스토랑 발드소Hostellerie du valdesault(www.valdesault.com)로 향한다. 숙박과 식당을 겸한 이곳은 셰프이자 주인인 이브 가트쇼Yves Gattechaut의 진미를 맛볼 수 있는 구메 스테이Gourmet Stay로 유명한 리조트다. 그날의 스페셜 코스는 전채요리에서 디저트까지 라벤더를 주제로 한 음식들. 어찌 이런 조리법을 상상해냈을까 싶게 라벤더가 곁들여진 요리들이 줄지어 나온다. 기름에 튀겨낸 라벤더 꽃가지를 맛보았다. 로맨틱한 향기와 대조적으로 아주 쌉싸름한 맛인데 씹을수록 뭉친 어깨 근육이 스멀스멀 풀어지고 여독까지 사라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로마 시대부터 라벤더는 약용식물로 인정받아 머리를 맑게 해주고 피로를 해소시켜주는 명약으로 쓰였으리라. ![]() ![]() 이제 포만감을 안고 해발 1천 미터나 되는 고지에 자리한 샤토 라 가벨(www.chateau-la-gabelle.com)을 찾아간다. 이곳은 중세로 돌아간 듯 분위기가 고즈넉하다. 한여름엔 주변의 라벤더 꽃 덕분에 공기조차 향기롭고 초원이라서 하이킹도 제격이다. 늦가을에는 라벤더 꿀 채집과 함께 야생에서 캐낸 귀한 버섯, 트뤼플을 맛볼 수도 있다. 프로방스식으로 조리한 유기농 아침식사가 포함된 게스트 하우스 하루 숙박비는 100유로 정도. 조용한 이곳에서 며칠 보낸다면 친환경적인 삶의 진가를 만끽할 수 있을 것 같다. 라벤더 꽃을 보고 먹고 만지면서 충분히 즐겼다면 꽃에서 향수의 원료인 에센셜 오일을 채취해내는 과정이 궁금해질 차례. 프로방스에 전문 박물관이 여럿이지만, 쿠스텔레 라벤더 뮤지엄(www.museedelalavande.com)을 가보길 권한다. 16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구릿빛 온갖 증류기들이 전시되어 라벤더의 종류, 쓰임새, 채취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섭렵할 수 있기 때문. 라벤더 여행의 갈무리로, 뮤지엄 안의 부티크 숍에서 라벤더 포푸리나 향수, 목욕 비누를 하나 구입한다면 더없이 좋은 기념품이 될 것이다. ![]() 라벤더에 코끝이 호사하던 며칠이 이어지자 이번에는 내 눈이 간절히 호소하기 시작한다. 사실, 꽃향기에 이미 후각은 둔감해져 있던 터라 시각의 즐거움을 배려해 폴 세잔Paul Cezanne(1839~1906)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길로 일정을 바꾼다. 그러려면 세잔 서거 100주기가 되는 내년을 위해 대규모 행사 준비가 한창인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가 필수 코스. 그의 생가와 묘지는 물론, 그가 다닌 학교, 미사를 보던 성당, 한때 살았던 집과 그가 즐겨 그린 장소, 산책로까지 도시 곳곳에 표지판이 즐비해 세잔 시市라고 불러도 넘치는 표현이 아니다. 이 도시에서 성공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난 세잔은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화가의 길을 택한다. 젊어서는 파리에서 화가로 활동했지만, 말 많은 비평계에 염증을 느낀 그는 고향 엑상프로방스로 내려와 세상과 절연한 채 68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여생을 보낸다. 그를 기억하기 위해 첫 번째 방문한 장소는 세잔의 마지막 작업실(www.atelier-cezanne.com)이다. 지금은 부유한 주택들이 즐비한 로보 언덕을 아침 일찍 오른다. 백 년 전 이 길을 자근자근 밟았을 그를 떠올리면서… 세상의 이해를 구하기 위한 설득과 해명의 수단을 철저히 거부했던 그가 인물화마다 입을 다물게 그린 것은 자신의 타협 불가능한 성격을 넌지시 암시하려 했던 것일까? 이러저런 상상 끝에 그가 말년에 당뇨를 앓으면서 작업했던 화실에 이르렀다. 담장 안에는 혼자 걷기 외로울 만큼 넓은 정원이 있고, 화실 2층 창문은 시가지와 생트 빅투아르 산줄기들이 흘러내린 풍광을 고스란히 품어 안고 있다. 반듯한 직사각형 화실엔 재연이 아닌, 당시 작업실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세잔의 온기가 전해지는 듯하다. ![]() ![]() “역사상 유명한 사과가 셋 있는데, 첫째가 이브의 사과이고, 둘째가 뉴턴의 사과이며, 셋째가 세잔의 사과이다. 평범한 화가의 사과는 먹고 싶지만 세잔의 사과는 마음에 말을 건넨다.” 세잔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화가 모리스 드니의 말처럼, 한쪽엔 바구니에 담긴 사과가 말을 건넨다. 평생 남긴 750여 점의 작품들은 모두 미술관이나 소장가들 몫으로 흩어졌고 이곳엔 그 명화들의 소재였던 빈 병과 석고상이 주인 대신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그는 오전엔 화실에서 정물화를, 점심식사는 집에서, 오후엔 화실에서 10분 거리의 로보 언덕 정상에 올라 1천 미터 높이의 웅장한 산을 보고 또 보며 그렸다고 한다. 이처럼 그는 생트 빅투아르 산을 아꼈다. 이 산을 그린 작품이 88점인 것만 봐도 짐작이 가는 열정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한 획의 붓질도 마음대로 하지 않았던 엄격주의자 세잔에게 이 산은 수호신 같은 존재였으리라. 미색 종이를 구겨 던진 듯한 석회암질의 장중한 산 그림을 바라보면서 조선 후기 화가 정선에게 유화물감을 쥐여준다면 세잔처럼 그렸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실을 내려와 되 가르송Deux Garsons(두 소년)이란 카페에 들른다. 엑상프로방스 출신으로 19세기 프랑스 예술사의 두 거장, 폴 세잔과 에밀 졸라를 기리는 이름의 이 카페에서 커피 한잔으로 시각의 즐거움을 되새김질해보는 것도 의미 있기 때문이다. ![]() 유럽 출장을 가면 틈틈이 유명 와이너리(포도주 농장)를 찾아가 그 지방 특유의 와인을 시음해보는 일을 빠트리지 않는다. 세잔의 발자취 따라가는 여정을 끝낸 뒤 프로방스의 바르Var 지방 소도시 로그Lorgues를 방문했는데 샤토 루벵(www.chateauroubine.com)의 여주인을 시음장에서 만나 우연찮게 집까지 구경가게 되었다. 양귀비색 옷이 화사한 그녀와 함께 포도원에서 5분 거리인 집에 들어섰으니 미리 치울 여유 없는 기습 방문인 셈이다. 14세기부터 포도원이었다는 이곳의 문장紋章은 용과 사자를 우람하게 그린 방패 모양이다. 그 문장이 철대문 위에 버티고 서 있어 입구부터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집은 북이탈리안 스타일의 3층 석조 건물로, 1층 거실과 3층의 게스트 룸은 언제든 손님 맞을 준비가 갖춰진 깔끔한 분위기다. 동네 실내 수영장만 한 풀이 딸려 있고 사방이 33만 평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집은 포도원 주인다운 규모와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 ![]() 집구경을 하다가 정작 마음이 끌린 부분은 집의 구성원들이었다. 포도원 주인 필리프 리보Philippe Riboud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 프랑스 대표 펜싱 선수로 참가해 금메달을 안은 스포츠 스타로서, 은퇴 후 1994년부터는 와이너리 경영을 맡아 사업가로서 새로운 이력을 쌓아가고 있다. 그에게 서울에 대한 기억을 물었다. “내 평생 잊지 못할 금메달을 안겨준 곳이 서울이니 친근감을 느낍니다. 이태원이 특히 생각나요. 복도에 액자 보셨어요?” 자랑스레 가리키는 곳엔 한국 전통 탈들이 나란히 걸려 있다. 수줍은 남편에 비해 활발한 아내 발레리 리보Valerie Riboud는 입꼬리를 올리면서 시원스레 웃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스위스 로잔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한 그녀는 프로방스 토박이로, 펜싱 선수를 후원했던 부모님 덕분에 필리프를 만나 결혼했고 2남1녀를 낳아 나름대로 엄격하게 키우고 있단다. 한여름 늦오후에 들이닥친 이방인에게 딸아이가 유리 피처에 얼음이 동동 뜬 물과 살구 파이를 들고 나오고, 막내아들은 손님에게 볼을 맞대며 살갑게 인사한다. 아이들의 반듯한 인사성만 봐도 발레리의 가정교육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행복이요? 현실에 만족하는 것이지요. 저는 금메달리스트가 아니고, 성공을 앞둔 포도원 경영자이자 가장인 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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