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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노르망디 루아르

concert1940 2011. 6. 15. 09:58

에트르타


프랑스 북서쪽으로 르 아브르(Le Havre)를 지나 3시간가량 영국해협 쪽으로 가다보면 에트르타(Etretat)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코끼리바위라 불리는 절벽으로 유명한 에트르타는 두마리의 코끼리가 마치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처럼 마을해변의 양 옆을 지키고 있다. 에트르타는 자연이 만들어낸 기이한 절벽으로 일년 내내 관광객들을 부르고 있다.
왼쪽에는 덩치 큰 엄마 코끼리바위가 긴 코를 바다에 묻고 있고 반대편에는 작은 아기코끼리가 마치 엄마를 따라 하듯 코를 묻고 있었다.
왼쪽의 코끼리 바위 코 부분의 밑자락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까지 교도소로 이용됐다고 한다. 실제로 썰물 시간대에 드러나는 암벽의 아랫부분은 턱 높이까지 오는 낮은 터널이 바위 속으로 끝없이 길게 연결되어 있었고, 이곳이 밀물이 들어올 때면 다시 물로 잠기기를 반복하고 있다.

■모네 수련 작품의 작업장

지베르니


끌로드 모네는 250여점의 ‘수련’ 연작을 남겼다. 모네의 작품 대부분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과 마르모탕 미술관으로 옮겨 전시되고 있지만 지베르니 모네의 집에는 오늘도 한 화가가 정성들여 이룩한 예술공간을 보기 위한 인파가 끊이지 않는다. 연간 대략 40만명으로 추산되는 관람객수는 그 자체로는 많아 보이지만 입장료수입만 가지고는 운영, 유지관리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한다. 국내 외 많은 후원자의 도움과 자체 수익사업을 병행하고 있는데 11월~3월까지 동절기에는 휴관하는 관계로 수입은 더욱 줄어든다. 꽃과 초목이 시들어 버리고 노르망디 특유의 기후 탓으로 5개월간 입장객을 받지 않는 동안 원예관리를 통하여 다음해 공개를 준비한다는 설명이다. 꽃밭을 제외하고도 많은 볼거리로 관람객을 받을 수 있음에도 문을 닫는 대목에서 모네의 집이 꽃밭에 갖는 자부심을 읽는다.
모네의 집 경우처럼 원본작품은 없어도 식물원예학자까지도 관심을 갖는 현란한 꽃밭 그리고 일본식 다리를 가설하고 수양버들, 연꽃, 대나무등을 식재하여 이국풍광을 조성한 연못과 숲, 아울러 모네의 작업실을 활용한 구내상점(이곳에서는 모네와 관련된 온갖 종류의 문화아이디어 상품을 판매하는데 모네가 화단을 손질하던 원예도구까지도 복제하여 팔고 있다)등의 복합문화공간 운영으로 예술성확보와 경영에 모두 성공한 좋은 예를 보여준다.

몽생미셀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몽셀 미셀이 있다고 빅토르 위고가 말했을 정도 몽생 미셀은 신비로운 곳이다. 프랑스 사람들의 애정을 듬뿍 받을 뿐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이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로 손꼽는 곳이기도 하다.
매일 아침 몽생미셸 수도원이 문을 열면,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으로 변한 78.6m 높이의 화강암 바위산 길을 방문자들이 줄지어 오른다. 해마다 약 250만명이 이 곳을 찾고, 방파제 길 옆에 만든 주차장은 언제나 만원이다. 노르망디공 리처드 1세가 이 바위산에 베네딕투스회 수도원을 지은 것은 966년의 일이다. 그 뒤 수사들은 수세기에 걸쳐 수도원을 짓고 확장했으며, 꼭대기에 있는 부속 성당의 종탑을 정점으로, 위고가 말한 ‘바다 위의 피라미드’를 완성시켰다. 10세기 말에 오베르는 대천사 미카엘을 모신 예배당을, 둥근 천장을 갖춘 지하 예배당으로 개축했다. 이것이 바위산 서쪽에 있는 노트르담수테르(지하의 성모예배당)이다. 그 옆에는 역시 10세기에 만든 산책 장소가 있다. 터널처럼 생긴 이 갤러리는 수사들이 명상하던 곳이다. 11세기에는 생마르탱 지하 예배당(남쪽)과 30개의 양초 성모상이 있는 지하 예배당(북쪽), 큰 기둥이 있는 지하 예배당(동쪽)을 만들어 바위산 꼭대기의 높이를 조정했고, 그 위에 새로운 성당을 지었다. 바위산 꼭대기에 솟아 있는 성당은 신랑의 옆면 벽이 자주 무너졌는데, 1184년에 수도원장 로베르 드 토리니가 주도한 개축공사로 튼튼해졌다. 토리니는 노르망디공의 핏줄인 잉글랜드 왕 헨리 2세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몽생미셸 수도원을 크게 발전시켰다. 1066년에 노르망디공 기욤(잉글랜드 왕 윌리엄 1세)이 잉글랜드를 정복한 이후, 이 바위산 수도원은 노르망디 공국은 물론이고, 잉글랜드로도 영지를 넓혀 커다란 세력을 형성했다.
1211년에 시작된 북쪽 부분의 확장 공사로 나중에 ‘라메르베유(경이로운 건축)’라고 하는 우아하고 웅장한 고딕 건물이 탄생했다. 3층 건물인 ‘라메르베유’는 1층이 창고와 순례자 숙박소, 2층이 [기사의 방]과 귀족실, 꼭대기는 수사들의 대식당과 회랑 용도로 지었다. 2겹의 아케이드가 연이어 있는 ‘라메르베유’ 꼭대기층 회랑은 가늘고 긴 어두운 색 원주와 안쪽에 섬세한 조각을 새겨놓은 밝은 색 뽀족 아치가 명쾌한 리듬을 느끼게 해 준다. 회랑 중에 바다로 면한 쪽엔 일부 유리로 된 부분도 있어서 만 전체를 바라볼 수 있다


루아르 계곡


루아르 계곡의 풍경과 특히 풍부한 문화적 기념물은 르네상스 시대 이상의 예외성과 서유럽의 계몽 시대적인 사고와 디자인을 보여준다. 2000년 12월 2월 유네스코는 멘 강과 쉴리쉬르루아르 사이의 루아르 강 계곡 중심 일부를 세계유산으로 선정하였다.
300개가 넘는 성들은 건축자들이 10세기 성곽 요새의 필요성에 의해 시작된 국가로, 천년이 지나 이 건축물의 찬란함을 보여준다. 프랑스 왕들은 그들의 대규모 성을 이곳에 건축하였고, 귀족들은 권좌에서 멀리 물러나지 않기 위해서 왕의 행적을 뒤쫏았다. 온난한 기후와 풍부하고 비옥한 계곡에 위치한 성들은 그 당시 최고의 전경 디자이너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16세기 중엽 프랑수아 1세는 프랑스에서 권력의 중심부를 루아르로 부터 고대 대도시인 파리로 다시 이동시켰다.
발랑세성루아르 계곡(프랑스어: Vallee de la Loire)는 “프랑스의 정원”과 “프랑스어의 요람”으로써 알려져있다. 이곳은 앙부아즈, 앙제, 블루아, 쉬농, 오를레앙, 소뮈르, 투르 등, 역사적인 마을에 위치한 수준 높은 건축학적 유산으로 유명하며, 특히 앙부아즈 성이나 빌랑드리 성, 슈농소 성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샹보르성


샹보르 성(Chateau de Chambord)은 프랑스 루아르에셰르 주 샹보르에 있는 왕립 궁전으로,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궁전 중의 하나이다. 이 궁은 매우 뚜렷한 프랑스 르네상스 건축물로 전통적인 프랑스 중세 양식과 고전적인 이탈리아 건축물과의 혼합물이다. 1519년에 건설을 시작하여, 1658년에 완공되었다.
샹보르성은 프랑수아 1세를 위한 사냥 숙소의 기능을 위해 세워졌으며, 그는 블루아 성과 앙부아즈 성에 주거하였다. 이 궁전은 원래 도메니코 다 코르토나에 의해 디자인되었으나, 이 성의 초기 건축 기간인 20년간 동안 (1519?1547) 상당한 부분이 수정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앙부아즈 근처 클로 루세 성의 프랑수아 1세의 손님으로 오리지날 디자인에 참여하였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거의 경쟁적으로 프랑수아 1세는 그의 오랜 적인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인 카를 5세를 초대하면서, 그의 부와 권력의 거대한 상징을 과시하였다.

앙부아즈성


앙부아즈 성(Chateau d’Amboise)은 프랑스 루아르 계곡의 Indre-et-Loire 지역, 앙부아즈에 있는 성이다. 이 성은 ‘앙부아즈의 음모’라는 사건으로 유명하다. 1560년 종교 전쟁 동안 부르봉가의 위그노 교도들이 어린 프랑수아 2세의 이름하에 실질적으로 프랑스를 지배하던 기즈가를 대항하여 음모를 꾸몄다. 이는 기즈 백작에게 발각되어 수많은 교수형이 약 한달간 지속되었다. 종료될 때까지 약 1200명의 신교도들이 마을 벽에 목 매달어 죽었다.

슈농소 성


쇼농소 성(Chateau de Chenonceau)은 프랑스 루아르 계곡의 앵드르에루아르 주 내, 작은 마을인 슈농소 근처, 쉐르 강에 있던 오래된 방앗간 자리에서 11세기 전에 세워진 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