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시작되었다. 다른 해와 달리 올 장마는 초반부터 요란스럽게 찾아왔다. 천둥 번개가 한꺼번에 유리창을 흔들어댄다. 잠이 깨어 창밖을 내다보았다. 희끄무레한 새벽 빛줄기에 산이 형체를 드러내고 군데군데 하얀 산 김이 안개처럼 걸려있다.
매연 속에 버티고 있는 가로수 잎들과 숲속에 피어나는 안개. 쏟아지는 빗줄기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몸짓에서 묻어나는 소리가 있다. 말은 없지만 입을 꽉 다물고 퍼붓는 빗줄기를 감당하는 모습에서 목청을 높이는 아우성소리를 듣는다. 나의 큰 소리를 대신 소리쳐주고 있는듯하다 나무들의 침묵이다.
나무만이 아니라 경마장의 달리는 말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아우성을 들을 때도 있다. 마주의 혹독한 이재에 보답하기 위해 묵묵히 달리고 달리는 말, 무슨 생각을 하면서 달리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달리지 않으면 안 되기에 달리는 동물로 태어난 말들, 비단 말 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들이 다 그러하다.
시내에 나갔다가 시청광장을 거닐어 본다. 파란 잔디가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 은사시나무 잎이 반짝이고 차의 소음이 멈추지 않는 환경 속에서 느끼는 평온함, 이질감을 동반한 휴식 을 취할 수 있어 좋다. 잠시 텅 비어있는 광장에 서 있으니 소리 없는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수많은 고뇌와 분노, 인내로 이어 온 우리의 역사는 그 뿌리가 깊이 박혀있어 언제까지나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남아있다. 시대가 변하면 변할수록 또렷이 기억되는 피 끓는 함성, 통곡과 울분들. 성큼 다가 선 현대에 살면서 아직도 나는 그때의 그 아우성을 듣고 있다. 나무가 서걱 이는 흔들림 속에서, 빗줄기를 동반하여 세차게 날아다니는 날카로운 바람소리에서도 가슴 아픈 함성을 듣고 있다.
며칠 전 아랫집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인 말소리는 간간히 들리는데,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에 섞여 그 집 남자의 굵은 쇳소리가 귀를 울렸다. 현관을 통해서 울리는 고함소리는 층계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퍼져 나갔다. 날씨는 무더워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날 지경인데 오히려 이웃 집 부부싸움은 청량제를 마신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슨 일로 언성을 높이는 걸까. 귀는 아랫집을 향하고 있었다. 남의 싸움에 흥미로워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쩌면 내면으로부터 솟아나는 나의 불만이 그들에게 얹혀 지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소리들, 가슴속에 눌러놓고 한숨짓는 가슴앓이를 토해내지 못하는 나대신 쏟아내듯. 대리 다툼에 만족해하는 스스로에게 웃음을 흘리며 아랫집 부부의 목청이 점점 커지기를 기다린다.
문을 열고 창밖으로 고개를 길게 내밀어 본다. 또렷이 들리는 다툼의 소리로 주제를 알고 싶어서다. 스스로 생각해도 염치없는 짓이 분명한데 멈출 수가 없다. 내가 지르고 싶었던 소리들이었다. 내가 퍼붓고 싶었던 아우성이었다. 통쾌하다. 속이 시원하기조차 하다. '쨍그렁' 유리그릇의 몰락이 천장을 뚫고 밀려온다. 아,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만족을 느낀 뒤 오는 허탈감일까.
안정된 생활 속에서도 이따금 다른 이의 함성을 들을 때 응어리져 있던 덩어리가 부서져 내리는 것을 느끼곤 한다. 아랫집 전쟁은 막을 내린 듯 조용해졌다. 별안간 정적이 흐르는 밤공기가 싸늘하다. 나는 덤으로 소리 없는 전쟁에 합세하여 내 아우성을 토해내고 있다.
매연 속에 버티고 있는 가로수 잎들과 숲속에 피어나는 안개. 쏟아지는 빗줄기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몸짓에서 묻어나는 소리가 있다. 말은 없지만 입을 꽉 다물고 퍼붓는 빗줄기를 감당하는 모습에서 목청을 높이는 아우성소리를 듣는다. 나의 큰 소리를 대신 소리쳐주고 있는듯하다 나무들의 침묵이다.
나무만이 아니라 경마장의 달리는 말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아우성을 들을 때도 있다. 마주의 혹독한 이재에 보답하기 위해 묵묵히 달리고 달리는 말, 무슨 생각을 하면서 달리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저 달리지 않으면 안 되기에 달리는 동물로 태어난 말들, 비단 말 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들이 다 그러하다.
시내에 나갔다가 시청광장을 거닐어 본다. 파란 잔디가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 은사시나무 잎이 반짝이고 차의 소음이 멈추지 않는 환경 속에서 느끼는 평온함, 이질감을 동반한 휴식 을 취할 수 있어 좋다. 잠시 텅 비어있는 광장에 서 있으니 소리 없는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수많은 고뇌와 분노, 인내로 이어 온 우리의 역사는 그 뿌리가 깊이 박혀있어 언제까지나 지워지지 않는 흉터로 남아있다. 시대가 변하면 변할수록 또렷이 기억되는 피 끓는 함성, 통곡과 울분들. 성큼 다가 선 현대에 살면서 아직도 나는 그때의 그 아우성을 듣고 있다. 나무가 서걱 이는 흔들림 속에서, 빗줄기를 동반하여 세차게 날아다니는 날카로운 바람소리에서도 가슴 아픈 함성을 듣고 있다.
며칠 전 아랫집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인 말소리는 간간히 들리는데,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에 섞여 그 집 남자의 굵은 쇳소리가 귀를 울렸다. 현관을 통해서 울리는 고함소리는 층계로 엘리베이터를 향해 퍼져 나갔다. 날씨는 무더워 가만히 있어도 짜증이 날 지경인데 오히려 이웃 집 부부싸움은 청량제를 마신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슨 일로 언성을 높이는 걸까. 귀는 아랫집을 향하고 있었다. 남의 싸움에 흥미로워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쩌면 내면으로부터 솟아나는 나의 불만이 그들에게 얹혀 지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소리들, 가슴속에 눌러놓고 한숨짓는 가슴앓이를 토해내지 못하는 나대신 쏟아내듯. 대리 다툼에 만족해하는 스스로에게 웃음을 흘리며 아랫집 부부의 목청이 점점 커지기를 기다린다.
문을 열고 창밖으로 고개를 길게 내밀어 본다. 또렷이 들리는 다툼의 소리로 주제를 알고 싶어서다. 스스로 생각해도 염치없는 짓이 분명한데 멈출 수가 없다. 내가 지르고 싶었던 소리들이었다. 내가 퍼붓고 싶었던 아우성이었다. 통쾌하다. 속이 시원하기조차 하다. '쨍그렁' 유리그릇의 몰락이 천장을 뚫고 밀려온다. 아,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만족을 느낀 뒤 오는 허탈감일까.
안정된 생활 속에서도 이따금 다른 이의 함성을 들을 때 응어리져 있던 덩어리가 부서져 내리는 것을 느끼곤 한다. 아랫집 전쟁은 막을 내린 듯 조용해졌다. 별안간 정적이 흐르는 밤공기가 싸늘하다. 나는 덤으로 소리 없는 전쟁에 합세하여 내 아우성을 토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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