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샘

할머니의 꽃상여/고진갑

concert1940 2009. 2. 14. 09:47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그해 여름의 막바지 장마는 유난히도 덥고 습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찾아뵈었을 때는 그저 노환으로 기력이 쇠약해지신 것이라 생각하며 큰 탈이야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할머니, 다음에 올 테니 그때는 건강해지셔야 해요.”라는 말이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신은 85세의 삶을 마감하시는 날 아침, 자식들에게 지금이 몇 시이냐고 물어보시고는 저 세상으로 가셨다.


할머니에 대한 추억은 막냇동생이 태어난 후 어머니가 나를 할머니께 맡겼던 그 여름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릴 적 병치레도 자주 하고, 넘어져서 다치기도 많이 했던 나에게 그럴 때마다 과자를 집어 주시며 달래곤 하셨다. 한여름 더운 줄도 모르고 들과 산으로, 개울가를 뛰어놀다가 집에 돌아오면 편하게 쉴 수 있었던 곳이 할머니의 품이었다.


세월이 흘러 어릴 적의 일들은 잊혀지고 있지만, 할머니께 들었던 옛날 이야기들만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일제 식민 시절, 한국전쟁 당시의 피란 경험, 도깨비와 귀신 이야기 등 다양하고 재미있었던 할머니의 구성진 말씀들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다. 할머니는 10남매를 낳으셨지만 전쟁 중에 두 아들을 묻고, 후에 병으로 아들딸 둘을 앞세워야만 했으나 결코 우리에게 당신의 슬픔을 겉으로 나타내지 않으셨다. 오히려 당신의 손자까지 지성으로 돌보아 주시던 분이었던 것이다.


그 날 아침,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어머니에게서 전해 들으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집으로 가는 내내 할머니에 대한 추억들이 머릿속에 서 영상처럼 스쳐갔다. 그러나 이제 다시 뵐 수 없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주체없이 흘러 내렸다. 큰댁에 도착하여 차려진 궤연(几筵)을 보니 북받쳐 오르는 슬픔을 참을 수가 없어서 한동안 목을 놓아 울었다.


돌아가신지 사흘째 되는 날, 할머니가 타고 가실 꽃상여가 만들어졌다. 생전에 좋아하셨던 꽃과 나비가 잔뜩 그려진 꽃상여는 그 옛날 시집오셨을 때 타셨던 아름다운 꽃가마와도 같았다. 새색시 적에는 혼자 타고 오셨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슬프게 곡을 하는 자손들이 저승길 가시는 동안 외롭지 않도록 뒤를 따르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상여가 나가는 날은 아침부터 구름이 걷히고 맑은 하늘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동네 어귀부터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산 언저리까지 상여꾼들이 운구를 하는 동안 녹음이 짙은 마을에는 여름 햇살이 가득하였다. 마을을 돌아 한참 후에야 할아버지 산소가 있는 뒷동산에 도착했다. 할아버지와 합장을 하기 위해 봉분이 열려 있었고, 할머니의 관이 조심스럽게 내려졌다. 삼베로 감싸인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흙이 덮여질 때 이것이 삶과 죽음의 이별이라는 생각을 했다.


점점 메워지는 흙을 다지며, 이승에서의 마지막 의식을 마치는 동안 산역(山役)꾼들의 입에서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지금은 기억할 수 없지만, 언젠가 할머니가 흥얼거리시던 그것과 비슷하였다. 슬픔이 가득한 마음이었지만 슬프지 않은 가락을 따라서 흥얼거리며, 어쩌면 할머니와의 이별이 슬퍼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간을 했다. 이승에서의 편안한 이별을 위해서 남아 있는 이들이 기쁘게 보내 드리는 의식을 표현하는 방법일 수도 있었다.


잔디를 입히는 작업이 끝나니 정오가 훨씬 넘었다.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힘들지 않았던 것은 할머니와의 마지막 이별을 가슴에 생생히 담아두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장례 의식을 마친 후 할머니를 태우고 왔던 꽃상여는 불꽃이 되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생각하며 오랫동안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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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마음을 잘 표현만 하면 되는 것이 글인 줄 알았는데,
6개월 간의 훌륭하신 분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으면서
우물안에서 하늘을 보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비록 갈길이 멀고 빠져들수록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동시에 그것을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두 번의 작품을 제출하면서 아직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관심을 놓치지 않도록 유념하겠습니다.
'안면도 여행'도 수업후 바로 수정하였지만 시간이 오래되어 삼가하고,
'할머니의 꽃상여'를 선생님의 가르침과 문우님들의 합평으로 수정하였지만,
결국 주제를 살리지는 못했습니다. 바쁘시지만 아무쪼록 보아주시고
배움을 잊지 않고 실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수색에서 고진갑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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