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 너머로 웃고 있는 해바라기가 좋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해바라기가 넘겨다보는 돌담 길을 자주 찾곤 한다. 바로 갈 수 있는 길을 일부러 돌아 발걸음을 그리로 돌리는 것이다. 넉넉한 얼굴로 노랗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도 따라서 넉넉해진다. 해님만 바라보고 사는 해바라기의 일편단심이 좋다.
나의 해바라기는 여섯 아이들이다. 오로지 그 아이들을 쳐다보며 이 자리까지 왔다. 내 해바라기들은 얼마나 많은 기쁨을 안겨주었던가. 빨간 해바라기, 노란 해바라기, 파란 해바라기, 각기 색깔과 개성을 지닌 해바라기들은 내게 큰 기대와 삶의 희열을 주었다. 그들로 해서 나는 보람을 느꼈고 사는 것이 즐거웠다.
그랬기에 내 해바라기들은 끊임없이 내 곁에서 이어 피면서 언제까지나 제 자리에 서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기만의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리며 모종을 정성스레 가꾸기 시작했다. 제각기 바라보아야 할 자신만의 대상을 만들어가느라 바쁘고 분주해지는 모습을 나는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내 주위에는 아이들이 있어도 늘 부부 중심으로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우리와 달리 아이들이 우선이 아니라는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다. 둘만의 조촐한 외식을 즐기러 나가기도 하고 둘만의 여행을 즐기기도 한다. 그들은 부부 중심의 생활을 강조했지만, 우리 내외는 그런 생각을 받아드리기조차 힘들었다.
나는 지금껏 아이들을 위해서 헌신하고 아이들 중심으로 가정을 꾸려나가는 게 옳다고 여기며 살아왔다. 아이들이 재산이요 아이들에게 투자하는 사업이 가장 가치가 있음을 강조하며 그렇게 수십 년을 지내왔다.
우리 내외의 그런 가치관은 이 시대에서 벗어나고 뒤떨어진 생각일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내 아이들은 각기 다른 모습들로 성장했다. 만지기도 아까운 크리스털처럼 조심스레 보듬고 가꾸어 이제는 어엿한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이제 그 애들은 자신들이 해바라기할 대상을 찾느라 분주하다. 그러고는 저마다 씨를 뿌리고 비료를 주어 튼실한 해바라기를 키워가고 있다.
내가 살뜰이 보살펴주던 아이들을 하나씩 떠나보내고 왜 이다지도 허탈한 가. 우리내외는 서로를 바라보며 마지막 삶을 가꾸어야 하는데, 마주 보는 마음은 그저 쓸쓸하기만 하다. 떠났던 아이들이 모이면 식탁이 풍성해지고 집안은 활기에 넘치지만 우리 내외만 있는 집안은 적막할 뿐이다. 둘만의 대화를 찾느라 애를 쓰다가도 문득 돌아보면 역시 아이들에 대한 화제만을 입에 올리고 있음을 알게 되고, 그래서 또 우리는 마주보며 허전한 웃음을 흘린다.
우리 내외가 걸어온 삶의 뒤안길에는 늘 아이들이 있었다. 우리가 스러져 갈 그날까지 그 여섯 해바라기 우리 뒤에 서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토담 울타리 너머로 훌쩍 키가 커버린 해바라기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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