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평생에 삼배의 예禮로 스승으로 모신 분이 있음을 행복하게 생각한다.
배움이 모자라고 마음이 옹색한 나를 가엾게 여긴 하늘이 스승을 맞을 좋은 인연을 주셨다.
한 번의 절은 나이 어린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 신분이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에게 하는 인사법이다. 두 번 절은 죽은 사람에게, 세 번 절은 신(神)에게 올리는 인사법이다. 사람에게 삼배를 올리는 것은 신처럼 숭배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경봉선사鏡峰禪師와는 딱 한 번 친견親見하고 삼배를 올린 인연이지만, 마음속에서 그 분의 음성이 들려와 잊혀 지지 않는다. ‘산부처’로 불교도들의 숭앙을 받으며 우리나라 최고의 선승禪僧으로 통도사 극락암에 계셨을 때였다. 처음으로 친견한 자리에서 그분은 물었다. “길이 없는데 어떻게 왔는가?” 나는 무심결에 대답하고 말았다. “마음속에 길이 있지 않습니까?” 그 순간, 얼굴이 타는 듯 붉어짐을 느꼈다. 그분은 팔순 노인이셨고, 나는 30대 후반이었다. 불쑥 말을 해놓고 보니, “모르겠습니다.”라고 해야 더 적절했다. 그냥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있는 게 좋을 법했다. 대답을 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스러웠다.
그 후 프랑스의 철학가이자 문학가인 레비스트로스가 한국을 방문하여 통도사 극락암을 찾아가 경봉선사와 선문답禪問答을 나눈 일이 있었다. 경봉선사의 물음이 ‘길이 없는데 어떻게 왔는가?’임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경봉선사를 만난 불자 20여 명을 찾아 물어보고, 또 한 번 놀랐다. 경봉선사의 질문은 오직 하나였다. ‘길이 없는데 어떻게 왔는가?’
오, 경봉선사가 만인에게 던진 그 질문은 결국 자신에게 향한 것임을 비로소 알았다. 오로지 이 질문의 답을 구하기 위해 암자에서 40여 년 참선수도를 했으며, 일생을 걸었다.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생노병사生老病死’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숙명과 존재에 대한 풀리지 않는 마지막 질문이었다.
경봉선사는 한 번 만남과 질문으로 ‘인생 길’이란 화두를 주셨다. 그 질문이 천둥처럼 울려와 ‘지금 어디에 서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로 하여금 언제나 자문자답自問自答하게 만든다.
2007년 5월 국민적인 관심과 애도 속에 타계하신 수필가 피천득 선생은 세 번 절을 올려 스승으로 섬기던 분이셨다. ‘현대문학’지에 추천된 수필가들이 모여 ‘현대문학수필작가회’를 만들어 처음으로 동인지를 내었다. 조촐한 출판기념자리에 수필계의 원로 몇 분을 초빙하였다. 피천득 선생을 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초대장을 보내긴 했으나, 금아 선생은 한 번도 이런 자리에 참석한 일이 없다고 했다. 피천득 선생은 내 이름을 한 번 들어보기나 한 것일까, 내 작품 한 편이라도 읽어 보신 것일까? 수필로 등단하여 부지런히 써오긴 했어도 너무 허망하기만 했다. 나는 한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다. 어찌 된 일인지 금아 피천득 선생이 참석하셨다. 어렵게 부탁드린 격려사를 하실 때,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 “이런 자리에 나온 적이 없지만, 정? 炷?수필가를 죽기 전에 만나보려고 왔습니다. 저서에 서명을 하여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나는 서울로부터 가장 먼 지방에서 고독과 소외 속에 살면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수필에 매달려 있는 일이 잘한 것인지, 반신반의하며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금아 선생의 천만 뜻밖의 말 한마디는 나에게 광명의 등불이 돼주었다.
마산에서 서울로 가 금아 선생님을 찾아뵈었다. 선생님 댁 거실에서 세 번 절을 올리고 스승으로 모시겠다는 인사를 드렸다. 해마다 두세 번 스승을 찾아뵙고 수필과 삶에 대한 얘기를 나누곤 했다. 어느 해 가을, 댁을 방문하였을 적에 “난 이미 절필하였지만 오래오래 좋은 글 많이 쓰시오.”라는 말을 남기셨다. 금아 선생처럼 살 수는 없지만, 언제나 고결, 청초, 개결한 풍도와 격조 높은 인생 미학을 꽃 피운 삶과 수필을 우러러 본다.
절을 세 번 올릴 스승을 만나는 일은 하늘의 도움이 없인 어려운 일이다. 나는 돌아가신 두 분과의 인연과 은혜를 생각하면서, 스승을 만나게 해주신 하늘에 감사드리고 있다. 스승이 안 계시니 세상이 너무 적막하다. 절을 세 번 올릴 스승이 있었기에 행복하였고, 그나마 마음의 눈을 뜰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대고 스승에게 세 번 절하고 싶다.
'문학의 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웃과 함께 봄을 / 최광호 (0) | 2011.03.20 |
---|---|
눈 오는 날 참새들은 어디로 갔나 /이정림 (0) | 2011.03.17 |
花信 / 최선옥 (0) | 2011.03.13 |
황혼에 서서 / 이영도 (0) | 2011.03.09 |
해질녘에 오는 전화 / 반숙자 (0) | 2011.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