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솔베이그의 노래(Solvejg's Lied)’를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음악 시간에 선생님은 우리에게 합주로 나오는 연주와 소프라노가 부르는 성악을 한 차례씩 들려주고는 악보를 펼치게 했다.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더 세월이 간다. 세월이 간다.
아 그러나 그대는 내 님일세, 내 님일세.
내 정성을 다하여 늘 고대하노라, 늘 고대하노라.
아 ――
가사를 읽어가면서 기다리며 사는 사랑에 감동되었다. 가사에 따라 불리는 선율도 정감 있게 가슴에 파고들었다. 특히 뒷부분 “아―”의 멜로디는 내용 전체를 소리 하나로 아우르는 것이어서 아주 뜻 깊게 느꼈다. 소프라노 가수의 조용하고도 애잔한 목소리는 마치 호소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후 음반을 구해서 한동안 자주 들었다. 그리고, 봄과 여름이 가고 세월이 흘러도 항상 기다려주는 여인, 솔베이그는 한때 내가 꿈꾸는 여인상으로 담겨져 왔었다.
그런데 그 솔베이그를, 그런 여인상을 내게 안겨준 음악가 그리그를 만나러 노르웨이에 가게 되었다. 그래선지 오슬로에서 눈 덮인 스칸디나비아 산맥을 넘고, 송내 피오르드 관광을 즐기면서도, 마음은 그리그의 고향 베르겐 항구에 어서 도착하기를 바랐다.
에드워드 그리그(Edvard Grieg, 1843~1907)가 마지막으로 살던 집은 베르겐에서 좀 떨어진 바닷가 언덕 ‘트롤 호겐’(Troldhaugen)에 있다. 그의 집을 찾아가는 버스 속에서 나는 속으로 ‘솔베이그의 노래’를 두어 번 흥얼거렸다.
페르 귄트는 아버지가 재산을 탕진하고 죽었는데도, 집안을 일으킬 생각은 않고 공상과 엉뚱한 짓만 한다. 솔베이그를 마음속으로 사랑하고 있었는데, 마을 결혼식에 나온 예쁜 신부를 보고 납치하여 산속에 들어간다. 싫증이 난 그는 솔베이그를 찾아가 그 곁에서 지낸다.
어머니가 죽자 그는 새로운 생활을 위해 모로코로 떠난다. 부자가 되었다가 사기꾼에게 털리고, 아라비아에서 예언자가 되어 재물과 미녀를 얻는다. 세속적인 쾌락에 빠진 그는 꿈속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솔베이그를 보고 정신을 차린다.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금광에서 많은 돈을 벌어 고국으로 돌아오다가 폭풍우에 전복되어 겨우 목숨만 건진다. 빈털터리에 늙어빠진 노인이 되어 고향에 돌아온 그는 솔베이그의 오두막을 찾는다.
여전히 기다리고 있는 백발의 노파 솔베이그를 보는 순간, 몸과 마음이 쇠잔해진 그는 “당신의 정신이 나를 구해 주었구려” 하며 쓰러진다. 솔베이그는 꿈에도 그리던 그의 머리를 말없이 자기 무릎에 누이고 감싸 안고서, 조용히 '솔베이그의 노래'를 부른다. 페르 귄트는 노래 소리를 들으며 조용히 마지막 눈을 감는다.
그 풍성한 복을 참 많이 받고, 참 많이 받고
오, 우리 하느님 늘 보호하소서. 늘 보호하소서.
쓸쓸하게 홀로 널 고대함 그 몇 해인가.
아, 나는 그리노라, 널 찾아가노라, 널 찾아가노라.
한평생을 그리워하며 살다가, 백발이 되어 만나 숨을 거두는 연인을 품에 안고서 ‘참 많이 복을 받았노라’ 하느님께 감사하며, ‘널 그린다, 널 찾아가노라’ 하는 솔베이그의 청순무구한 사랑과 애절한 노래가 가슴을 파고든다.
‘솔베이그의 노래’는 극작가 입센(H. J. Ibsen, 1828~1906)의 의뢰로 『페르 귄트』(Peer Gynt, 1885)의 부대음악으로 작곡한 곡 중의 하나이지만, 극시보다도 훨씬 더 많이 사랑을 받는다. 음악이 문학과 멋지게 조화를 이루어 더 한층 감흥을 일으켜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념관과 콘서트홀을 살펴본 뒤, 그가 마지막으로 살던 하얀 2층집을 둘러보고, 육지 한 자락과 섬들이 방파제처럼 두른 호수 같은 주변의 멋진 풍경을 바라볼 때까지만 해도 나는 ‘솔베이그의 노래’를 잊고 있었다. 오히려 일찍부터 연금을 받으며 이런 멋진 환경 속에서 지냈기에 그런 많은 좋은 작품들을 작곡할 수 있었겠구나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바닷가 절벽에 있는 그리그의 무덤을 보면서 다시 생각했다. 가수인 부인과는 금슬이 좋아서 부인이 없으면 작곡을 하지 못했다고 한 그리그, 그는 “내 육체만은 내가 사랑했던 피오르드에서 햇빛이 빛나는 광경을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유언했다. 부인은 당시의 매장 관례를 버리고 화장하여 이곳에 납골당을 만들었다. 부인도 죽을 때 화장하여 에드워드와 함께 묻어 달라고 했다. 지금 바위벽에는 부부의 이름 ‘ADVARD’와 아래에 ‘NINA GRIEG’가 새겨져 있다.
‘솔베이그의 노래’는 상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바로 자신들의 삶에서 우러난 것이다. 그리그 부부가 그토록 서로 사랑했기에 창작되어진 것이고, 누가 뭐래도 우리 유골은 같이 살던 고향집 이 바위에 함께 묻히겠다는 굳은 믿음과 깊은 사랑으로 살았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예술작품은 상상의 것이지만 삶이 바탕인 것을 다시 깨닫게 한다.
삶은 사랑과 기다림이다. 누군가를 평생 사랑하고, 떨어져 있을 때 기다리는 것 이상의 아름다운 삶이 어디 있겠는가. 기다린다는 것은 외롭고 쓸쓸한 일이다. 언제 만날 것이라는 희망도 없을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런데도 기다리고 기다릴 수 있는 것은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솔베이그는 평생을 기다리며 살았다. 마지막으로 만나 숨을 거두는 연인을 가슴에 안고 조용히 사랑을 노래한다. 비장할 만큼 숭고한 삶이다.
그래선지 ‘솔베이그의 노래’를 들으면 칠순이 넘은 나이인데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고등학생 시절의 감동보다 못할 것이 없다.
사람은 늙어도 감동은 늙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심오함을 느낄 수가 있어서 연륜(年輪)의 깊이를 생각하게 한다.
<출처 (연변모이자 yanbian.moyiza.com), http://yanbian.moyiza.com/m_04/342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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