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갈대밭에서/ 손광성
▷손광성 : 수필가, 동양화가, 호는 一玄, 함남 홍원 출생. (1935~ )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과 졸업.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 졸업. 계성여고를 거쳐 서울고교 교사 역임. 서울시립대학교 시민대한 문예창작 강사. 수필집에는 <나도 꽃처럼 피어나고 싶다>, <달팽이>, <한 송이 수련 위에 부는 바람처럼> 등이 있다.
슬퍼하지 말자.
날카롭던 서슬 다 갈리고. 퍼렇던 젊은 핏줄 모두 잘리고, 눈, 코, 입.귀, 감각이란 감각들 다 닫혀 버리고, 바람에 펄럭이는 남루를 걸친 채 섰을 지라도, 슬퍼하지 말자
찬물에 발목이 저린 이들이 우리들뿐이겠는가.
물방개 같은 것들. 잠자리며 철새 같은 것들, 친구들. 다정했던 이웃들, 그들이 칭얼거리다 간 빈자리에. 아무것도 줄 수 없었던 내 무능의 뜨락에. 바람 말고는 이제 다시 찾아오는 이 없다 해도. 허기와 외로움도 때로는 담담한 여백일 수 있는것.
다 내 주어서 편안한 가슴들아, 갈대들아.
마른 허리 꺾고, 야윈 어깨 더 많이 꺾고, 이제 두레박 들어올려 물마실 기력마저 부친다 해도 슬퍼하지 말자. 강바람에 서로 몸을 한데 묶어 부축하고 버티면 버티는 만큼 힘이 솟는 겨울, 겨울이 모진 만큼 견디면 또 견뎌 내는 것을.
얼마 남지 않은 체온이나마 마른 몸 비벼 서로 나누어 보자. 가난이 파괴하는 것이 인격만이 아니라 해도 헐벗고 굶주려서 오리혀 따뜻한 것들아, 갈대들아.
세상에 흔들리는 것이 어디 너희들뿐이겠는가.
정에 흔들리고. 이해에 흔들리고. 그 참담한 통한의 아픔을 통해서 모든 아름다운 눈물들이 다시 꽃으로 피어나는 것을, 사람이란, 진실이란, 죽어서 굳어 버린 관념이 아니라 살아서 흔들리며 늘 아파하는 상처인 것을.
죽은 관념의 바위들아. 거짓 이념의 깃대들아. 우리의 가슴을 상하게 한 것들이 바로 너희들이었음을 이제 모두는 껶어서 깊이 머리 숙여 아나니. 오히려 흔들려서 더 선량한 마음들아. 어리고 여려서 더 아름다운 갈대들아.
이제 안타까운 씨앗들도 멀리 날려보내고, 지나는 바람에도 노상 펄럭이던 잎사귀들, 젊어서 더 아팠던 마음들이랑 죄다 떨구고, 가슴속마저 다 비우고 그리고 수척한 몸뚱어리 하나 이렇게 곧추세워 두는 것은, 그래도 우리들 뒤에 또 다른 봄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니.
슬퍼하지 말자. 공허란 마음에 가슴 아린 이들이 우리들뿐이겠는가.
우리보다 앞서 떠났던 그 때의 우리들처럼 이제 우리의 발등을 디디고 우리의 어깨를 짚고 또 다른 시퍼런 우리들이 새싹으로 푸른 바람 몰고 일어나 강둑 이쪽에서 강둑 저쪽까지 아득히 다시 한번 서늘한 삶을 나부낄 그 날이 오려니. 떠났던 물방개 같은 것들, 잠자리며 철새 같은 것들, 다정했던 이웃들도 다시 돌아와 서늘한 삶을 누릴 그 날이 오려니.
슬퍼하지 말자.뒤돌아보며 떠나는 이들이 우리뿐이겠는가.
편히 쉬어라. 노년의 머리카락 빛내며 떠나는 것들아. 다 내 주어서 편안한 가슴들아. 잃지 않으면 다시 얻을 수 없음을 우리는 묵묵히 아나니. 흔들리고 또 흔들려서 더 강해지는 것들아, 아름다운 갈대들아.
▷손광성 : 수필가, 동양화가, 호는 一玄, 함남 홍원 출생. (1935~ )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과 졸업. 동국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 졸업. 계성여고를 거쳐 서울고교 교사 역임. 서울시립대학교 시민대한 문예창작 강사. 수필집에는 <나도 꽃처럼 피어나고 싶다>, <달팽이>, <한 송이 수련 위에 부는 바람처럼> 등이 있다.
슬퍼하지 말자.
날카롭던 서슬 다 갈리고. 퍼렇던 젊은 핏줄 모두 잘리고, 눈, 코, 입.귀, 감각이란 감각들 다 닫혀 버리고, 바람에 펄럭이는 남루를 걸친 채 섰을 지라도, 슬퍼하지 말자
찬물에 발목이 저린 이들이 우리들뿐이겠는가.
물방개 같은 것들. 잠자리며 철새 같은 것들, 친구들. 다정했던 이웃들, 그들이 칭얼거리다 간 빈자리에. 아무것도 줄 수 없었던 내 무능의 뜨락에. 바람 말고는 이제 다시 찾아오는 이 없다 해도. 허기와 외로움도 때로는 담담한 여백일 수 있는것.
다 내 주어서 편안한 가슴들아, 갈대들아.
마른 허리 꺾고, 야윈 어깨 더 많이 꺾고, 이제 두레박 들어올려 물마실 기력마저 부친다 해도 슬퍼하지 말자. 강바람에 서로 몸을 한데 묶어 부축하고 버티면 버티는 만큼 힘이 솟는 겨울, 겨울이 모진 만큼 견디면 또 견뎌 내는 것을.
얼마 남지 않은 체온이나마 마른 몸 비벼 서로 나누어 보자. 가난이 파괴하는 것이 인격만이 아니라 해도 헐벗고 굶주려서 오리혀 따뜻한 것들아, 갈대들아.
세상에 흔들리는 것이 어디 너희들뿐이겠는가.
정에 흔들리고. 이해에 흔들리고. 그 참담한 통한의 아픔을 통해서 모든 아름다운 눈물들이 다시 꽃으로 피어나는 것을, 사람이란, 진실이란, 죽어서 굳어 버린 관념이 아니라 살아서 흔들리며 늘 아파하는 상처인 것을.
죽은 관념의 바위들아. 거짓 이념의 깃대들아. 우리의 가슴을 상하게 한 것들이 바로 너희들이었음을 이제 모두는 껶어서 깊이 머리 숙여 아나니. 오히려 흔들려서 더 선량한 마음들아. 어리고 여려서 더 아름다운 갈대들아.
이제 안타까운 씨앗들도 멀리 날려보내고, 지나는 바람에도 노상 펄럭이던 잎사귀들, 젊어서 더 아팠던 마음들이랑 죄다 떨구고, 가슴속마저 다 비우고 그리고 수척한 몸뚱어리 하나 이렇게 곧추세워 두는 것은, 그래도 우리들 뒤에 또 다른 봄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니.
슬퍼하지 말자. 공허란 마음에 가슴 아린 이들이 우리들뿐이겠는가.
우리보다 앞서 떠났던 그 때의 우리들처럼 이제 우리의 발등을 디디고 우리의 어깨를 짚고 또 다른 시퍼런 우리들이 새싹으로 푸른 바람 몰고 일어나 강둑 이쪽에서 강둑 저쪽까지 아득히 다시 한번 서늘한 삶을 나부낄 그 날이 오려니. 떠났던 물방개 같은 것들, 잠자리며 철새 같은 것들, 다정했던 이웃들도 다시 돌아와 서늘한 삶을 누릴 그 날이 오려니.
슬퍼하지 말자.뒤돌아보며 떠나는 이들이 우리뿐이겠는가.
편히 쉬어라. 노년의 머리카락 빛내며 떠나는 것들아. 다 내 주어서 편안한 가슴들아. 잃지 않으면 다시 얻을 수 없음을 우리는 묵묵히 아나니. 흔들리고 또 흔들려서 더 강해지는 것들아, 아름다운 갈대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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