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첫 밤을 보내고 눈을 떴다. 창밖 희끄므레한 하늘에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다.
"우리 아침 뭐 먹을까. 빵 먹을래?"
"엄마 전 됐어요. 커피면 돼요."
아침부터 연습하는 둘째에게 더 이상 말을 건넬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까만 식빵으로 혼자 아침을 때우면서 나는 문득 서울 우리 집 아침 식탁을 떠올린다.
아이들을 다 내보내고 남편과 단둘이 하는 식탁이지만 계절 따라 컵과 모든 식기를 바꿔가며 분위기를 돋군다. 그러다가 방학에 애들이라도 들어오면 그야말로 식탁은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탈바꿈을 한다. 식사시간이 늘 즐거웠다.
딸이 기거하고 있는 이곳은 말이 스튜디오지 피아노 한 대가 공간을 꽉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면적이 부엌이요 식당이다. 그러니 내가 있을 곳이 마땅치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아이들 음식을 만드는 일 밖에 없어 가지고 간 건어물을 꺼내 멸치 볶음이며 오징어무침을 만들기 시작했다.
"엄마, 냄새가 나면 집중이 안 되는데, 어떡하지……."미안해하는 둘째의 얼굴을 보니 그도 그렇구나 싶다. 그럼 내가 할일이 없단 말인가. 연습하느라 제대로 해먹지도 못할 것 같아 도와주러 왔는데, 어미는 아이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 기운이 빠진다.
나는 책 한 권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마침 몸이 으슬으슬 추웠는데, 화장실은 따뜻하고 넓고 깨끗해서 안성맞춤이다. 한번 피아노에 앉으면 서너 시간은 꼼짝하지 않는 아이기에, 그 애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화장실에서 책이나 읽어야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서글픈 생각이 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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